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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암 치료에 35년 바쳐 “지방 환아들은 지방에서 치료받을 수 있어야”

한국에서는 매년 약 1000명의 어린이가 암 진단을 받는다. 백혈병·뇌종양·신경세포종 등 성인암과는 전혀 다른 질환이다. 원인도 다르다. 흡연이나 식습관 같은 환경적 요인보다 성장 과정에서 발생하는 세포 돌연변이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며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병이다. 그러나 소아암은 전체 암의 20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사회의 관심과 지원에서 소외되기 쉬운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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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훈 화순전남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한국에서는 매년 약 1000명의 어린이가 암 진단을 받는다. 백혈병·뇌종양·신경세포종 등 성인암과는 전혀 다른 질환이다. 원인도 다르다. 흡연이나 식습관 같은 환경적 요인보다 성장 과정에서 발생하는 세포 돌연변이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며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병이다. 그러나 소아암은 전체 암의 20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사회의 관심과 지원에서 소외되기 쉬운 구조다.

화순전남대학교병원 소아청소년과 국훈(65) 교수는 35년째 이 분야를 지켜왔다. 외할아버지는 전남대학교병원 초대 병원장이자 소아혈액 전문의였고 어머니도 같은 길을 걸었다. 국 교수 역시 의사가 되면서 다른 과를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소아청소년과의 길은 자연스러웠다. ”아이들에게 인생을 바쳐야겠다“고 결심한 건 전공의 1년 차 때였다. 당시 소아암 생존율은 50%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 시기 미국은 소아 조혈모세포 이식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한국과 격차는 ‘스마트폰과 2G폰’에 비유될 만큼 컸다. 국 교수는 전문의가 되고 나서 미국 아이오와대에서 펠로 과정을 마쳤다. 현지 교수직 제안도 받았지만 귀국을 택했다. 이유는 하나였다. 같은 병을 앓는 미국 아이들이 치료를 받는 동안 한국 아이들은 죽어가고 있었다. 그 장면이 눈에 밟혀 한국행을 택했다. 현재 한국의 소아암 치료 수준은 미국과 큰 차이가 없다. 국 교수는 35년 동안 그 격차를 줄여왔다.

국 교수는 2006년부터 전라남도교육청이 운영하는 ‘여미사랑 병원학교’의 교장이기도 하다. 장기입원으로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이 치유 프로그램과 교과 수업을 함께 받을 수 있는 곳이다. ‘여미’는 화순의 옛 이름으로 ‘쉬어갈 수 있는 물가’라는 뜻이다. 2006년 초등과정, 2007년 중등과정을 개설했고 현재 초등학생 10명, 중학생 14명가량이 학업을 잇고 있다.

국 교수는 오는 8월이면 정년을 맞는다. 그러나 병원도 학교도 뒤를 이을 후배가 없다는 사실이 그의 걸음을 무겁게 한다. 화순전남대병원 진료실에서 그를 만나 소아암 의료 현실을 물었다.

지역 환자 가족이 겪는 가장 큰 고충은 무엇인가.
소아암은 수술 한 번으로 끝나는 병이 아니다. 백혈병만 해도 치료에 2~3년이 걸리고 열이 나면 한밤중에도 즉시 응급실로 가야 한다. 서울에 연고가 없는 가족이 원정 진료를 택하면 부담은 상상 이상이다. 요즘은 맞벌이가정이 대부분인데 한 사람은 아이 곁을 지켜야 하니 일을 놓아야 한다. 수입이 당장 반으로 줄어드는 것이다. 형제·자매가 있으면 문제는 더 커진다. 아픈 아이에게 집중하다 보면 다른 아이가 정서적으로 소외될 가능성이 크다. 서울에 거주지까지 마련해야 한다면 비용 부담은 몇 배로 늘어난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도 버티기 어렵다.

‘지역 완결형 치료’, 즉 지역에서 발생한 환자는 지역에서 치료를 마치는 것이 중요하다. 실력 부족이 아니라면 지역에서 해결해야 한다. 가족이 무너지지 않으려면 필수적 조건이다.

현재 소아암 의료 현장의 위기는 어느 정도인가.
치료비 지원 등 금전적 도움은 과거보다 늘었다. 그러나 지금 가장 큰 문제는 의사 부족이다. 소아 혈액종양 전문의는 전국에 약 70명뿐이며 이 중 3분의 1 이상이 올해 안에 정년을 맞는다. 전공의가 유입돼야 전문의·교수로 이어지는데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 자체가 끊겼다.

전남대병원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현재 교수 세 명 중 내가 8월에 정년퇴직하면 두 명이 모든 걸 감당해야 한다. 365일 당직까지 소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진료를 중단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이는 특정 병원의 문제가 아니라 지방 전반의 현실이다. 어떤 유인책도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소아암 환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소아암은 치료를 마치면 정상적인 사회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는 병이다. 치료 후에도 지속적 지원이 필요한 질환과는 다르다. 실제로 중학교 시절 소아암을 앓았던 환자가 수능 만점을 받고 의과대학을 졸업한 사례도 있다. 내 환자 중에도 의사가 된 이들이 있다. 지금은 아프지만 치료를 잘 받으면 건강하게 사회에 기여하는 일원이 될 수 있다.

소아암 전공을 기피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인가.
현재 소아암 5년 생존율은 한국과 미국 모두 약 85% 수준이다. 반대로 말하면 15%는 결과가 좋지 않다는 말이다. 그럴 경우 예측하기 어려운 부작용과 합병증을 의사 책임으로 돌리고 ‘의료사고’ 소송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이런 일을 한두 번 겪으면 의욕이 꺾인다. 여기에 낮은 수가 구조도 기피의 요인이다.

정부도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수의료 지원책을 고민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의료 종사자의 사법적 위험을 줄이고 환자 보상을 강화하기 위한 의료사고처리특례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수가 보상체계도 손질하고 있다. 정부는 중증·응급, 분만, 소아 등 필수의료 분야에 추가 보상을 제공하는 ‘공공정책 수가’를 도입해 최대 200%까지 보상할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국립대병원의 운영 자율성을 높이고 지역 중심 필수의료 체계를 강화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결국 소신껏 진료하며 장기적으로 경력을 이어갈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젊은 의사들이 필수의료 분야를 선택할 수 있다.

후계자를 키우려면 어떤 제도가 필요한가.
의대에는 사명감을 가지고 오는 학생들이 분명히 있다. 이들에게 소송 부담 없이 소신껏 진료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줘야 한다.

35년간 버티게 한 힘은 무엇인가.
어른 치료는 병만 낫게 하면 되지만 아이들은 치료하는 도중에도 성장한다. 학교생활은 잘하는지, 교우관계는 어떤지, 가정환경까지 다 살펴야 한다. 초등학생이던 환자가 진학하고 취업하고 결혼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다.

급성림프성 백혈병을 앓았던 환자가 완치 후 어느 날 청첩장을 들고 오더니 아이도 낳았다. 또 과테말라에서 ‘판코니 빈혈’이라는 선천성 희귀병을 앓고 있던 아홉 살 아이가 선교사의 연결로 이곳에 와서 조혈모세포이식을 받고 완치됐다. 그런 환자들을 보는 것이 기쁨이다.

환자와 가족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소아암은 아이의 잘못도 가족의 잘못도 아니다. 국가가 책임져야 할 영역이다. 아이들이 완치되면 미래 세대의 주역이 된다. 최근 고 이건희 삼성 회장 유족이 3000억 원을 기부한 소아암 및 희소 질환 지원사업이 진행 중이다. 덕분에 환아들이 100만 원 이상의 고가 검사를 무상으로 받을 수 있고 ‘미세잔존질환 차세대염기서열분석’ 등 해외 최신 진료도 지원받을 수 있다. 우리나라 의료 수준은 세계 최고 수준까지 올라왔다. 치료 과정은 길고 힘들지만 치료를 마친 뒤 소방관이 돼서 찾아온 환자처럼 희망은 반드시 온다.

서하나 기자

취약지 소아 야간·휴일 진료기관 육성 사업 시작

소아 의료 취약지

야간·휴일 진료 공백 해소… 14곳 선정 지원
정부가 소아 의료 취약지역의 야간·휴일 진료 공백을 해소하기 위해 ‘취약지 소아 야간·휴일 진료기관 육성’ 사업을 시작했다. 기존 달빛어린이병원이 없는 지역을 중심으로 진료 접근성을 보완하겠다는 취지다.

보건복지부는 공모(3월 10~20일)와 학계·전문가로 구성된 선정위원회 심사를 거쳐 총 14개 진료기관을 선정하고 4월 14일부터 순차적으로 운영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선정 과정에서는 소아 야간·휴일 진료 공백 상황과 기관의 소아 진료 역량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

기존 달빛어린이병원이 주 7일 평일 야간(18~23시)과 휴일(10~18시) 등 고정시간대 중심으로 운영되는 것과 달리 이번 사업 참여 기관은 지방자치단체와 협의를 통해 주 20시간 범위 내에서 진료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정부는 선정된 기관에 대해 연간 1억 2000만 원(국비 50%, 지방비 50%)을 지원한다. 14개 기관은 5월까지 모두 운영을 개시하고 하반기 추가 공모를 통해 지원 대상을 더 확대할 방침이다.

복지부는 ”정부와 지자체, 지역 병·의원이 힘을 합쳐 지역 의료체계를 개선하고 소아 진료 기반을 강화할 것“이라며 ”환자의 건강권 보호는 물론 지역 정주 여건 개선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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