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전쟁 장기화로 국제유가와 물가, 공급망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정부가 민생과 산업 현장의 충격을 줄이기 위한 범정부 대응을 강화하고 있다. 정부는 고유가 지원과 공급망 안정, 중소기업 금융 지원, 취약계층 보호 등 전방위 대책을 통해 중동발 위기의 국내 파급을 최소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5월 6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20회 국무회의 겸 제7차 비상경제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중동 전쟁 관련 비상국정운영과 대응 현황을 점검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관세법 시행령 개정안도 의결됐다. 개정안은 전쟁 등 불가피한 사유로 물품 운송경로가 바뀌어 실제 운임이 선박회사의 통상 운임보다 크게 높아진 경우 관세 과세가격 산정 시 통상적 운임을 적용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정부는 이를 통해 수입업체의 추가 관세 부담을 줄이고 수입 물가 안정을 도모한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석유제품 최고가격제와 유류세 인하 조치가 국내 물가 상승을 상당 부분 억제했다고 평가했다. 5월
7일 열린 ‘민생물가 특별관리 관계장관 TF’에서 최고가격제가 없었다면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8%, 4월은 3.8% 수준에 달했을 것이란 분석이 제기됐다. 실제 상승률은 각각 2.2%, 2.6%였다. 중동 전쟁 이후 국제 휘발유 가격은 73.9% 급등했지만 국내 휘발유 가격 상승률은 16.6%에 그쳤다.
먹거리와 원자재 가격 안정 대책도 병행한다. 정부는 할당관세 적용 효과를 점검한 결과 대형마트 기준 바나나, 망고, 파인애플, 냉동고등어 등 일부 품목에서 가격 인하 효과가 나타났다고 밝혔다. 앞으로는 할당관세 품목의 수입·유통·판매 전 과정을 상시 점검하고 가산세 기준 강화와 반출 명령 신설 등 제도 개선도 추진할 계획이다.
관세청은 긴급 수요 품목에 대해 입항·하역 전 통관을 지원하고 있으며, 러시아산 나프타와 정부 비축유에 대한 신속 통관도 지속할 방침이다.
요소수 공공비축분 방출
행정안전부는 요소수 수급 불안 가능성에 대비해 공공비축분 일부를 시장에 방출했다. 현재 국내 차량용 요소 및 요소수 재고는 약 3개월분 수준이지만 기업별 재고 상황이 다를 수 있는 만큼 특정 산업 현장에서 부족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을 고려한 조치다.
중소기업 지원도 확대된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중동 전쟁 장기화에 따른 경영애로 해소와 경쟁력 강화를 위해 추경을 통해서 총 5500억 원 규모의 정책자금을 공급한다. 세부적으로는 긴급경영안정자금 2500억 원, 신시장진출지원자금 1000억 원, 혁신창업사업화자금 1500억 원, 재창업자금 500억 원 등이다. 특히 긴급경영안정자금 지원 대상에 ‘중동 전쟁 피해기업’을 새롭게 포함하고 수시 신청·접수를 통해 신속 지원체계를 가동하기로 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고유가에 따른 관광시장 위축 우려에 대응해 관광진흥개발기금 융자 지원 규모를 상반기 기준 4375억 원으로 확대한다. 이는 당초 계획된 3375억 원에 추경 1000억 원을 추가한 규모다. 이와 함께 창업 초기 관광사업체를 위한 스타트업 융자 300억 원도 별도로 편성했다. 관광업계의 경영 안정뿐 아니라 관광산업 체질개선과 일자리 창출까지 함께 겨냥한 대책이다.
고용 충격에 대응하기 위한 제도 정비도 진행 중이다. 고용노동부는 ‘고용위기지역’과 ‘특별고용지원업종’ 지정 요건을 개선해 위기 대응 속도를 높이기로 했다. 정량요건 산정기간을 기존 신청 직전 12개월에서 6개월로 줄이고 구직급여 신청자 수에 일용노동자도 포함해 현장 상황을 현실적으로 반영하도록 했다.
의료제품 수급 관리·매점매석 단속 강화
취약계층 보호에도 나섰다. 보건복지부는 약 25만 명을 대상으로 복지사각지대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4월 셋째 주 기준 약 4만 7000명에 대한 조사를 완료했으며 남은 대상도 차질 없이 조사해 위험군을 집중 발굴·지원할 계획이다. 정부는 긴급복지와 긴급·일상돌봄 관련 추경 예산도 상반기 내 신속 집행해 생활안정 지원을 강화할 계획이다.
보건의료 분야에서는 의료제품 수급 안정 대책이 추진된다. 복지부는 산업통상부와 함께 약포지·투약병 제조업체에 원료를 우선 공급하고 플라스틱 기반 의료소모품 제조업체에 대한 긴급경영안정자금 지원 상황도 점검하고 있다. 또 환율 상승에 따른 제조·수입업체 부담 완화를 위해 치료재료 건강보험 수가 상한 인상 조치도 우선 시행했다.
원자재 수급 불안을 틈탄 매점매석과 담합 등 불공정 행위에도 강력히 대응하기로 했다. 물가안정법상 매점매석 위반 행위에 대해서는 벌금이나 징역 외에도 관련 물품을 몰수하거나 추징할 수 있는 근거가 있는 만큼 필요할 경우 강도 높은 제재를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앞으로도 국제유가와 물가, 고용, 산업 현장 동향을 면밀히 검토하며 중동 전쟁 장기화에 따른 충격에 대응할 계획이다. 특히 민생 안정을 최우선에 두고 가용한 정책수단을 총동원하겠다는 방침이다.
김경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