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스띠리오니 끼안띠 2016

johny1140

November 2,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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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까스띠리오니 끼안띠 [CASTIGLIONI CHIANTI]
빈티지: 2016
원산지: 이탈리아, 토스카나
와이너리: 프레스코발디 [FRESCOBALDI]
품종: 산지오 베제 (95%), 까르베네 소비뇽 (5%)
도수: 13%
구입처: 그랜드 하얏트 서울 (서울시 용산구 소월로 322)
가격: 33,500원

얼마 전, 국내 최고의 지식인으로 손꼽히는 분이 참석하시는 행사의 촬영을 의뢰받은 일이 있었다. 장소는 그랜드 하얏트 호텔. 많은 이야기를 할 수는 없지만, 평소 동경하는 분이었기 때문에 설레기도 했고, 또한, 이런 중요한 촬영은 나로서도 그리 흔하게 겪는 일이 아니기에, 긴장되기도 했다. 다행히, 촬영은 무사히 끝났고, 세 시간여에 걸쳐 이어진 행사 내내 그 분의 밝은 표정을 잘 담아낼 수 있었다.

촬영이 끝나고 사무실로 돌아가려는데, 몇년 전 호텔의 컨시어지 매니저로 일했던 경험이 있기도 하고, 또, 처음 방문해 본 곳이기도 해서, 호텔을 이리저리 조금 둘러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자연스레 발견하게 된 1층의 와인샵. 규모가 아주 크지는 않았지만, 구대륙의 프랑스, 이탈리아부터, 신대륙인 미국과 칠레까지, 다양한 와인이 종류별로 구비되어 있었다. 담당 MD의 세심한 디테일이 엿보이는 듯했다.

게다가 더욱 놀랐던 건, 대다수의 와인이 3만원 이하에 팔리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저렴한 와인 위주로 판매한다기보다, 마진을 줄여 좋은 와인을 낮은 가격에 판매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쪽으로 눈을 돌리든 Value Deal이라는 메모가 붙어있는 1~2만원 대의 와인이 보였다. 이리저리 세심한 눈으로 살펴보다 눈에 들어온 끼안띠. 비슷한 시기에 방영된 TvN의 알쓸신잡 유럽편에서 그 이름이 조명되기도 했었고, 이탈리아 와인은 나로서도 처음이라, 망설임 없이 집어들었다.

중요한 일을 잘 끝낸 날이라, 축배를 들고 싶었고 말이다.

일단,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역에서 700년 전통을 자랑하는 프레스코발디 와이너리에서 만든 와인이라는 점이 가장 주목해야 하는 부분이 아닐까 한다. (700년 전이면 고려시대다..) 이 와이너리의 와인은 브루넬레스키와 같은 르네상스 시대 최고의 예술가들이 즐겨 마셨다고도 전해지고, 가문 대대로 영국 왕실의 결혼식에 초청을 받는 등,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가문 중 하나이기도 하다. 와이너리에 대한 내용은 테이스팅 노트를 다 써내려간 후에 알게 된 내용인데, 이 와인이 3만원 초반(와인으로는 그리 비싼 편도 아닌)인데도 흠 잡을 곳 없이 훌륭했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만 같다.

이 와인은 향이 풍부해서 대체로 가벼운 느낌이 나지만, 탄닌의 풍미를 적당히 머금고 있어서 밸런스가 좋다. 풍부한 과일향과, 꽃향기, 혀를 가볍게 감싸는 신맛, 그리고 적당히 남아 이어지는 떫은 탄닌의 풍미가 참 인상적이다. 당도도 꽤 있는 편이지만, 설탕같은 단순한 달콤함이 아니라, 섬세하고 복잡하고 다양한 맛이 한데 어우러진 느낌이다. 개봉 후 공기와 접촉하면서 맛이 판이하게 달라지는 와인도 있고, 한 잔 한 잔이 색다른 맛으로 다가오는 재밌는 와인도 있지만, 이 와인은 개봉하면서부터 마지막 잔까지 큰 변화가 없는 풍부한 밸런스를 보여준다. 확실한 자기 색깔이 존재한다기보다, 탁월한 밸런스와 향으로, 마시는 내내 기분을 가볍고 좋게 만들어주는 와인이었다.

향과 맛이 꽤나 화려하지만, 확실한 탄닌의 베이스가 굳건하게 베이스 노트를 지켜주기 때문에, 탄탄한 밸런스가 깨지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끝맛에 확고하게 묻어나는 탄닌의 느낌이 과하지 않아서 참 좋다. 정석에 가까운 우직함, 그러나 그 안에서 느껴지는 절제된 기교가 돋보이는 와인이었다. 어떤 음식과 페어링하더라도 기분좋게 마실 수 있는 와인이지 않을까? 특히, 축하할 일이 있는 날에 잘 어울리는 와인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