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경기 동두천시의 한 회전 교차로에서 있었던 일이다. 주류를 실은 트럭 한 대가 곡선 구간에 진입하는 순간 소주 30상자가 도로 위로 쏟아져 내렸다. 도로는 순식간에 깨진 병과 파편으로 아수라장이 됐고 차량 통행이 많은 퇴근시간대라서 정체와 2차 사고가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예상 밖의 장면이 펼쳐졌다. 지나가던 시민들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발적으로 사고 현장으로 모여들었다. 한 시민이 맨손으로 유리 파편을 정리하자 그것을 본 로또판매점 주인은 장갑을 건넸고 수족관 사장은 제설도구인 밀대를 들고 나와 파편을 쓸어 담았다. 젊은 청년은 쓰레받기를 들고 합세했다. 그렇게 시민들이 힘을 모은 결과 현장은 30분 만에 정리됐다. 그리고 방금 전까지 땀 흘리던 사람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제 갈 길을 갔다.
이 뉴스를 본 해외 누리꾼들은 이것이야말로 한국인의 특징이라며 놀라움을 드러냈다. 평소에는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다가도 위기 상황이 오면 한 몸처럼 똘똘 뭉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한국인의 의식구조, 이를 공동체의식 또는 상호부조, 연대의식이라고 부른다. 한국인은 지구상에서 그 어떤 민족보다 공동체의식이 강하다.
위기의 순간, 하나가 되는 사람들
공동체의식의 사례는 우리 역사의 마디마디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국사는 ‘외침의 역사’라고 할 정도로 수많은 침략과 전쟁을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은 대동단결이었다. 한 누리꾼의 표현처럼 ”한국인은 길거리에서 싸우다가도 주변에 큰일이 생기면 다 같이 힘을 합쳐서 도와줍니다. 그러고 나서 또 마저 싸워요.“ 평소 의견 차이가 존재하더라도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양반이고 상민이고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두가 공동체를 지키는 주체로 나섰다.
공동체를 우선하는 이러한 의식은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중요한 키워드다. 1907년에는 ‘나라 빚은 국민이 갚자’는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났다. 대한제국이 일본에 진 빚 1300만 원을 국민 스스로가 갚아서 국권을 회복하자는 운동이었다. 그 결과 담배를 끊고 그 돈으로 빚을 갚자는 단연(斷煙)운동이 전국을 휩쓸었고 여인들은 비녀와 반지까지 내놓았다. IMF 외환위기 때 전 국민이 금모으기운동에 동참했던 역사의 원형이 바로 국채보상운동이었다. 2007년 태안 기름 유출 사고 때는 약 123만 명이 기름 제거에 참여했다. 코로나19 때는 마스크 사재기 대신 양보와 기부가 더 큰 사회적 움직임으로 나타났다. 집중호우가 발생하면 전국 각지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수해 현장으로 향하는 모습도 같은 맥락이다. 이 모든 역사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생존 감각에 가깝다.
한국인이 유난히 공동체의식이 강한 이유는 민족성이 특별히 이타적이거나 착해서가 아니다. 단기간에 많은 노동력이 필요한 농경사회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서로 돕는 것이 나를 돕는 일“
농사는 모내기, 김매기, 추수를 할 때 한 가구의 힘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 마을 사람들이 힘을 모아야 한다. 그래서 품앗이와 두레 같은 공동체 문화가 발달했고 공동 노동과 공동 식사, 공동 놀이를 통해 마을 사람 모두가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의식과 신뢰가 쌓였다. ‘서로 돕는 것이 곧 나를 돕는 일’이라는 의식과 ‘나보다는 우리’라는 신념은 농경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전략이었다. 이런 전통이 지속된 가운데 한국인은 남을 돕는 것을 당연하게 인식했고 타인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는 정(情)의 문화가 발달했다. 지하철 역사에서 한 사람이 쓰러지면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이 마치 훈련이라도 받은 것처럼 각자 역할을 나눠 돕는 모습도 마찬가지다. 한국인에게 너는 곧 또 다른 나의 페르소나다.
한국인의 공동체의식은 논쟁보다 행동이 앞서는 실행력이 가장 큰 특징이다. 한국인은 원인 규명보다 사태 수습을 우선한다. 일단 사태를 수습한 후 원인을 따져보자는 태도다. 고조선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 역시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공동체 정신을 담고 있다. 500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그 정신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공동체 DNA로 이어지고 있다. 그 유전자야말로 우리나라의 가장 강력한 글로벌 문화 자본이다.
조정육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