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들은 디지털자산 전문가가 되고 싶은 게 아닙니다. 그냥 원래 하던 사업을 이어가고 싶은 겁니다.”
해외 거래처에서 스테이블코인으로 대금을 보내겠다고 한다. 외국인 직원에게 테더(USDT)로 돈을 지급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어느 지갑으로 받아야 하는지, 어떤 사업자를 이용해야 하는지, 받은 자산은 어디에서 바꿀 수 있는지, 거래처에 다시 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회계 기록에는 무엇을 남겨야 하는지까지 기업이 직접 알아봐야 한다.
박지수 수호아이오 대표가 현장에서 만난 기업들의 고민은 새로운 금융상품을 찾는 것보다 훨씬 현실적인 곳에 있었다. 돈을 받고 보내는 일이다. 기존에는 은행 안에서 처리하던 업무에 디지털자산이 들어오는 순간 기업이 챙겨야 할 일이 급격히 늘었다.
기관급 디지털자산 금융 인프라 기업 수호아이오는 30일 서울 강남 해시드 라운지에서 ‘서울 디지털 머니 서밋(SDMS) 2026 Q4: Wiring Korea to the World’를 열고 기업용 디지털자산 금융 인프라 ‘수호 파트너허브(SOOHO PartnerHub)’와 글로벌 금융 파이프라인 전략을 공개했다.
‘서울 디지털 머니 서밋(SDMS) 2026 Q4: Wiring Korea to the World’에서 기업의 디지털자산 활용과 글로벌 금융 파이프라인 전략을 발표하고 있는 박지수 수호아이오 대표
이날 행사에는 KB증권, NH투자증권, 메리츠증권을 비롯해 글로벌 정산 네트워크 파티오르(Partior), 온도 파이낸스(Ondo Finance), 타이거리서치(Tiger Research), 알리움랩스(Allium Labs) 등 국내외 금융·디지털자산 업계 관계자들이 참여했다. 기업의 디지털자산 활용에서 예금토큰 기반 국경 간 결제·정산, 토큰화 주식과 글로벌 자본시장까지 디지털 금융 인프라의 실제 활용 방안을 논의했다.
키노트에 나선 박 대표는 자신들의 역할을 ‘금융 배관공’에 빗댔다. 기업이 디지털자산이라는 새로운 금융기술을 직접 공부하고 여러 사업자를 하나씩 연결하도록 하는 대신, 돈이 필요한 곳까지 흘러갈 수 있도록 뒤에서 금융 인프라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겠다는 의미다.
“기업은 기술보다 거래가 먼저”…현장에서 시작한 금융 배관공
수호아이오가 이런 방향을 잡은 계기는 기업 현장이었다. 박 대표는 최근 부산과 포항 등 산업 현장을 직접 찾아 기업 관계자들을 만나며 실제 자금 거래 방식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기업 간 무역거래뿐 아니라 외국인 근로자 지급, 여행사의 해외 거래 등에서 스테이블코인이 이미 사용되고 있었다.
“현실에서는 이미 다양한 디지털자산을 쓰고 계시는 상황이 돼버렸습니다.”
박 대표에 따르면 해외 거래 과정에서 USDT나 USDC 등 스테이블코인을 요구받는 기업이 늘고 있다. 여행사의 경우 해외 항공권을 확보하기 위해 자금을 신속하게 보내야 하고, 해외 고객에게 제품을 판매하는 기업은 거래 상대방이 스테이블코인 결제를 요구하기도 한다. 국내 은행 계좌 이용이 어려운 외국인 근로자에게 디지털자산으로 대금을 지급하는 사례도 현장에서 접했다.
기업들이 부딪히는 문제는 스테이블코인을 받은 이후부터 더 복잡해진다. 법인 지갑이나 계정을 마련하고 거래 사업자를 찾아 이용 조건과 비용을 확인해야 한다. 받은 자산을 어떻게 활용할지 결정한 뒤 송금과 지급까지 연결해야 하며, 거래 내역을 회계와 감사에 맞게 기록하는 절차도 필요하다.
박 대표는 이를 두고 “고객들의 니즈는 심플한데 해야 하는 일은 거의 은행을 만드는 일처럼 느껴진다”고 표현했다. 돈을 보내고 받으려 했을 뿐인데 기업이 금융 인프라 전체를 직접 조립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얘기다.
수호아이오는 지난해부터 기업 및 금융기관과 진행한 PoC를 통해 외환거래와 현장결제, 송금 등 각각의 금융 업무를 경험하면서 이를 하나의 업무 흐름으로 묶는 작업을 진행했다. 새로운 디지털자산 서비스를 하나 더 만드는 것보다 기업이 기존에 하던 일을 그대로 이어갈 수 있도록 금융 서비스 사이의 연결을 맡는 쪽을 택했다.
“저희가 돈을 수탁하거나 바꿔드리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직접 할 수 있도록 필요한 기술 파트너를 찾고 계약하고 연결하는 작업을 쉽게 만드는 겁니다.”
박 대표가 말한 ‘금융 배관공’의 역할이다.
국내외 금융·디지털자산 업계 관계자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서울 디지털 머니 서밋(SDMS) 2026 Q4: Wiring Korea to the World’ 현장. 수호아이오는 이날 기업의 디지털자산 활용부터 예금토큰 기반 글로벌 결제·정산까지 한국과 글로벌 금융망을 연결하는 금융 인프라 전략을 공개했다.
지갑 대신 회사 자금 현황을 본다
이날 공개한 ‘수호 파트너허브’는 이 문제를 기업의 업무 화면 안에서 풀었다. 기업마다 별도의 시스템을 설치하는 방식이 아니라 SaaS 형태로 제공하며, 필요한 금융 인프라를 미리 연결해 기업이 하나의 환경에서 선택해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출발점부터 일반적인 가상자산 지갑과 다르다. 기업 재무 담당자에게 중요한 것은 어떤 블록체인에 어떤 토큰이 들어 있는지를 나열하는 화면보다 회사가 보유한 자산이 얼마인지, 지금 어떤 지급 업무가 진행되고 있는지, 승인이 끝났는지, 거래 상대방에게 자금이 도착했는지 확인하는 일이다.
파트너허브에서는 여러 지갑에 흩어진 자산을 한 화면에서 확인하고 송금 요청부터 승인, 처리 과정까지 추적할 수 있다. 완료된 업무 내역도 기록해 향후 회계감사나 거래 확인에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박 대표는 제품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자산의 증감보다 “내가 일하는 방식 그대로 해야 한다”는 기업 담당자들의 요구가 더 컸다고 전했다.
기업이 필요한 금융 서비스를 찾는 과정도 허브 안으로 넣었다. 거래(Trade)를 통해 자산을 사고팔고, 운용(Earn)을 통해 유휴자산을 활용하며, 향후 송금과 결제까지 연결한다. 수호아이오가 자산을 직접 중개하거나 수탁하는 것이 아니라 연결된 파트너의 조건을 비교한 뒤 기업이 직접 선택하고 거래하는 방식이다.
박 대표는 이를 항공권 가격을 한 번에 비교하는 ‘스카이스캐너’에 비유했다. 기업이 여러 사업자를 개별적으로 찾아 계약하지 않아도 파트너허브에서 필요한 서비스를 확인하고 조건을 비교한 뒤 직접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실제 기업이 이런 인프라를 직접 구축하려면 여러 종류의 사업자를 동시에 연결해야 한다. 박 대표는 수호아이오처럼 관련 기업을 이미 알고 있는 경우에도 다섯 종류 안팎의 사업자를 연결하는 데 평균 4개월가량 걸린다고 설명했다. 기업이 단순히 돈을 주고받기 위해 이 과정을 처음부터 반복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얘기다.
‘예금토큰 기반 금융 인프라의 미래’를 주제로 국경 간 결제·정산과 디지털 금융 인프라의 변화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 패널들. (왼쪽부터) 박지수 수호아이오 대표, 아난드 비누콘다 파티오르 사업개발 이사, 김지원 KB증권 리서치본부 차장, 홍성욱 NH투자증권 리서치본부 책임연구원
기업의 돈에서 은행의 돈으로…한국과 세계 잇는 파이프라인
파트너허브가 기업의 자금 흐름을 연결한다면 다음 단계는 한국 금융과 글로벌 금융망을 잇는 작업이다.
수호아이오는 최근 전략적 협력 관계를 맺은 글로벌 정산 네트워크 파티오르와 예금토큰을 활용한 글로벌 결제·정산 연계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 기업이 디지털자산을 받아 다시 거래와 지급에 활용하는 흐름과 은행 예금이 디지털화돼 글로벌 금융망으로 연결되는 흐름을 하나의 금융 파이프라인으로 이어가고자 한다.
박 대표는 국내에서는 예금토큰의 역할을 주목했다. 은행 예금이 토큰화되고 이를 글로벌 송금과 정산에 활용하는 한편, 장기적으로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등장할 경우 예금이 준비자산으로 활용될 가능성도 제시했다. 이 부분은 박 대표 개인의 전망이며 관련 제도와 금융 구조가 마련돼야 현실화할 수 있다.
이어진 ‘예금토큰 기반 금융 인프라의 미래(To Swift or Not to Swift)’ 패널토크에서는 예금토큰과 기존 국제결제 인프라의 관계가 논의됐다. 국내 금융권과 파티오르 관계자들은 예금토큰을 활용한 국경 간 결제·정산, 은행 간 연결 방식과 함께 국내 금융기관이 준비해야 할 시스템과 제도적 과제를 다뤘다.
예금토큰과 스테이블코인을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대체하는 관계로만 보기 어렵다는 의견도 나왔다. 금융상품과 거래 목적에 따라 각각 다른 역할을 맡을 수 있고, 시장과 규제 환경에 따라 실제 사용 영역이 정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국내 증권사가 토큰화된 자산을 다룰 경우 발행에서 결제와 보관, 유동성 관리, 이자 지급과 상환까지 기존 증권 시스템과 연결하는 작업도 필요하다는 의견이 이어졌다.
두 번째 패널토크 ‘토큰화 주식과 자본시장의 구조 전환(Rewiring the Capital Markets Stack)’에서는 강병하 메리츠증권 상무, 쿠날 파텔 온도 파이낸스 아시아 총괄, 키스 여 알리움랩스 APAC 총괄, 안광호 타이거리서치 연구원 등이 토큰화 주식과 글로벌 온체인 자본시장을 논의했다.
수호아이오가 이날 그린 금융 파이프라인은 디지털자산을 더 많이 쓰게 만드는 데서 출발하지 않는다. 이미 디지털자산으로 돈을 받고 보내야 하는 기업이 기존 자금을 관리하듯 이를 처리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먼저다. 그런 다음 기업의 자금 흐름을 은행의 예금토큰과 연결하고, 다시 글로벌 결제·정산망으로 이어 한국 금융과 세계 금융 사이의 통로를 만든다.
박 대표는 키노트 마지막에 이를 짧게 정리했다. “평소 회사 돈을 다루듯 디지털자산을 다루는 게 제일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기업은 본업에 집중하고 복잡한 금융 연결은 뒤에서 맡는다. 수호아이오가 스스로에게 붙인 ‘금융 배관공’이라는 이름에는 이날 공개한 글로벌 금융 파이프라인의 방향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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