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은 온돌 마니아였다. 1425년 7월 17일자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세종대왕의 온돌 사랑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세종대왕은 성균관 학생들이 습질(濕疾·피부병)에 걸리는 일이 많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러자 현재의 기숙사인 동재(東齋)와 서재(西齋)를 수리하여 온돌(溫堗)로 만들고 목욕탕을 설치하라고 명을 내렸다.
그해 9월 14일 기록에도 온돌에 관한 언급이 보인다. 당시 세종대왕은 병에서 회복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였던 듯하다. 성치 않은 몸으로 10월 초의 강무(講武)에 참석하려 하자 옥체가 상할까 염려한 신하들이 너무 빠르다고 반대했다. 그러자 임금이 이렇게 답했다. ”낮에는 두꺼운 옷을 입고 사냥 나가고 밤에는 따스한 온돌에 자면 탈이 나지 않을 것이다.“
세종은 온돌 마니아
세종대왕은 온돌의 효능을 굳게 믿은 듯하다. 1450년경에 어의(御醫) 전순의(全循義)가 쓴 ‘산가요록’에는 겨울철에 온돌 기술을 이용해 온실을 만들어 각종 채소와 꽃을 재배했다고 적혀 있다. 세계 최초로 알려진 독일 하이델베르크 온실보다 훨씬 앞선 것으로 이 역시 온돌 덕분이었다.
온돌은 신석기시대의 노지가 점차 구들 시설로 발전했다고 추정한다. 그러나 다른 지역과 다른 한반도 온돌 문화의 맥은 고구려 온돌에서 찾을 수 있다. 한반도의 온돌 역사는 2000년이 넘었다는 뜻이다. 경남 하동군 칠불사의 선방인 ‘아자방(亞字房)’은 1100여 년 전인 신라 효공왕 때 구들도사로 불리던 담공선사가 축조했다고 전한다.
아자방은 약 8m의 이중 온돌방 구조로 한 번 불을 때면 온기가 49일간이나 지속됐다고 알려져 있다. 온돌은 초기에는 주로 하층의 민간에서만 사용했다. 민간에서는 흙바닥(土床) 위에 자리를 깔고 침실로 이용했다. 양반은 병풍을 두르고 화로를 사용하다 조선 초기에 유생과 지배층에서 건강을 목적으로 온돌을 사용했고 점차 온돌방에 장판지를 바르고 벽에 도배를 하면서 지금의 형태를 갖췄다.
김안로(金安老)가 1525년에 지은 ‘용천담적기’에는 16세기 양반이 온돌방에 기름종이(油紙)를 깔아 매끄럽고 청결하게 유지했다고 적혀있다. 그러나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집 역시 바닥 난방이 기본이다. 온돌 문화는 2018년에 대한민국의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됐다.
한옥의 온돌 구조는 아궁이, 고래(화갱), 구들장(石板), 개자리(연료 찌꺼기 모이는 곳), 굴뚝으로 구성돼 있다. 아궁이에서 불을 때 바닥을 데우고 바닥의 열로 방안의 공기를 따뜻하게 하는 난방 방식이다. 이때 연기는 바닥을 통해 굴뚝으로 나가기 때문에 방안은 청결함과 따뜻함만 남고 먼지는 제거된다.
벽난로, 라디에이터, 온풍기 등 서양의 대류난방 방식과 달리 우리는 방바닥을 데워 그 열이 위로 올라가게 함으로써 방안 전체를 따뜻하게 하는 방식이다. 한번 데워지면 열기가 오래가므로 에너지 효율도 뛰어나다.
한반도에서 온돌 문화가 발달한 원인은 기후의 영향이 가장 크다. 한국의 여름은 고온다습하고 겨울은 한랭건조하며 연교차가 30도가 넘는다. 온돌이 아니었으면 극강의 온도차를 잡을 수 없었을 것이다. 온돌은 한국인에게 독특한 문화를 선사했다.
온돌방에서 단련된 가족공동체 문화
조선시대 건축물이 단층 건물로 발전한 것도 온돌 때문이다. 실내에서는 신발을 벗고 따뜻한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는 좌식생활이 발달했다. 한복의 바지통은 가부좌에 편하도록 넓어졌다. 여기에 유교가 접목되면서 가족 윤리와 예절 문화가 자리 잡았다. 함께 식사하고 대화하면서 집안의 대소사를 함께 의논했고 따뜻한 아랫목은 노인이나 연장자에게 양보하고 윗목은 젊은이가 앉는 장유유서가 발달했다. 유대감과 공동체의식이 강한 한국인의 특성은 가족 전체가 온돌방에서 함께 생활한 가운데 발생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서도 주인공들이 마루에 앉아 소파에 등을 기대는 모습이 나온다. 바닥이 차가워 카펫을 깔고 신발을 신고 사는 서양인에게는 바닥에 앉거나 눕는 모습이 낯설었을 것이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몸이 녹초가 됐다가도 절절 끓는 온돌방에서 자고 나면 가뿐해진 경험을 기억한다.
최근 누리소통망(SNS)을 보면 외국인도 온돌 문화를 체험했다는 사연이 자주 올라온다. 온돌에 푹 빠진 외국인 중에는 ”내가 과거에 온돌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라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고 한국을 떠난 후 가장 그리운 것이 온돌이라고 말한 사람도 있다. 바야흐로 세계 사람들이 온돌을 통해 발바닥부터 온몸으로 퍼지는 따뜻함을 알게 된 것이다.
조정육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