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집’의 기준이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입지와 면적, 브랜드가 집값을 결정했다. 하지만 AI와 함께 성장한 알파 세대에게 집은 단순한 부동산이 아니다. 사용자를 이해하고, 먼저 반응하며, 생활을 연결하는 환경에 가깝다.
실제로 글로벌 시장에서는 사용자의 생활 패턴을 학습하는 ‘에이전틱 AI 홈(Agentic AI Home)’이 등장하고 있으며, 미국에서는 주택 수천 채를 연결해 데이터센터처럼 활용하는 실험도 시작됐다. 주거의 경쟁력이 ‘어디에 있는가’에서 ‘어떻게 작동하는가’로 이동하고 있는 셈이다.
알파 세대가 요구하는 미래의 집은 단순한 스마트홈이 아니다. 사람을 이해하고, 먼저 반응하며, 연결과 연산까지 수행하는 ‘살아있는 플랫폼’에 가깝다. (자료 출처: AI 생성 이미지)
AI 없는 세상을 모르는 첫 세대가 온다
2040년 아시아에서는 약 9억6,500만 명 규모의 알파 세대 소비자가 시장의 핵심 수요층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 인터내셔널(Euromonitor International)에 따르면 현재 약 9조 달러 규모인 아시아 자녀 보유 가구의 소비 시장은 2040년 19조 달러 수준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도와 중국을 중심으로 중산층이 확대되고 가처분소득이 증가하면서 자녀 한 명에게 집중되는 소비 규모 역시 빠르게 커지고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변화는 소비 규모가 아니라 소비 방식이다.
알파 세대는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폰과 AI, 알고리즘 추천 서비스가 존재하는 환경에서 성장했다. 검색은 키보드보다 음성으로, 쇼핑은 직접 탐색보다 추천을 통해 이뤄진다. 생성형 AI가 정보를 요약하고, 플랫폼이 취향을 예측하며, 서비스가 먼저 행동하는 환경이 이들에게는 자연스럽다.
이들이 집에 요구하는 것 역시 비슷하다.
집에 들어온 뒤 스위치를 누르는 것이 아니라 들어오기 전에 조명이 켜지고, 실내 온도가 조정되며, 생활 패턴에 맞춰 서비스가 준비되는 환경이다. 유로모니터는 이를 ‘마찰 없는 경험(Frictionless Experience)’이라고 정의했다.
결국 알파 세대에게 좋은 집은 더 크고 비싼 집이 아니라 더 자연스럽게 반응하는 집이다.
집은 이제 ‘스마트’를 넘어 스스로 학습한다
이 같은 변화는 스마트홈의 개념 자체를 바꾸고 있다. 미국 부동산 전문 매체 맨션 글로벌(Mansion Global)은 최근 스마트홈이 단순 자동화 단계를 넘어 ‘에이전틱 AI 홈(Agentic AI Home)’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과거 스마트홈은 사용자가 명령을 내리면 작동하는 구조였다. 조명을 켜고 끄고, 에어컨을 작동시키고, 가전을 원격 제어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사용자의 수면 패턴과 이동 경로, 생활 습관을 학습해 맥락을 이해하고 스스로 환경을 조정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유로모니터는 이러한 변화를 세 가지 축으로 설명한다.
가전·보안·센서·에너지 시스템이 하나로 연결되는 ‘홈 에코시스템(Home Ecosystem)’, 스마트폰과 웨어러블, 자동차, 가전제품이 데이터를 공유하는 ‘기기 상호운용성(Device Interoperability)’, 그리고 쇼핑·교육·헬스케어·콘텐츠 서비스가 하나의 플랫폼 안에서 연결되는 ‘서비스 플랫폼(Service Platform)’이다. 결국 집은 독립적인 공간이 아니라 데이터를 중심으로 연결된 하나의 운영체제로 변하고 있다.
유로모니터는 “생성형 AI가 정보 탐색과 상품 추천, 콘텐츠 소비 전반을 지원하며 이미 아시아 가정의 의사결정 엔진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알파 세대는 이러한 환경을 기본값으로 받아들이며 성장하고 있다. 집이 스스로 학습하고 반응하는 일은 이들에게 특별한 기술이 아니라 당연한 생활 인프라가 될 가능성이 높다.
집이 연산하는 시대, 주거의 경쟁력이 바뀐다
흥미로운 점은 집의 역할 변화가 생활 편의성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집을 AI 연산 인프라로 활용하려는 시도까지 등장했다. 엔비디아(NVIDIA)와 미국 주택건설사 풀트그룹(PulteGroup), 스마트 전력관리 스타트업 스팬(SPAN)이 공동 추진 중인 ‘XFRA 프로젝트’가 대표 사례다.
이 프로젝트는 일반 가정에 소형 AI 서버를 설치하고 이를 네트워크로 연결해 집 자체를 AI 연산 노드로 활용하는 구조다. 배경은 단순하다. AI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데이터센터 수요는 급증하고 있지만 전력망과 인허가, 냉각 설비 문제로 신규 데이터센터 공급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SPAN은 미국 단독주택이 평균적으로 전체 전력 용량의 약 40%만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회사는 약 8,000채의 주택을 연결할 경우 100MW급 중형 데이터센터에 해당하는 연산 능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아직은 초기 검증 단계다. 전력 안정성과 보안, 소음, 지역 규제 등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업계가 주목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집이 단순히 에너지를 소비하는 공간을 넘어 데이터를 처리하고 가치를 생산하는 인프라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향후 가상발전소(Virtual Power Plant·VPP)와 분산형 전력 거래 플랫폼이 결합된 새로운 주거 생태계까지 등장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조인혜 한국프롭테크포럼 처장은 “알파 세대는 반응하는 환경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세대”라며 “유휴 전력을 연산 자원으로 활용하는 기술까지 결합되면서 집의 개념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과거에는 입지와 면적이 주거 경쟁력의 핵심이었다면 앞으로는 사용자의 삶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반응하는지가 중요한 가치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20세기 주거 시장의 경쟁력은 ‘어디에 있는가’였다. 역세권과 학군, 도심 접근성이 집의 가치를 결정했다. 21세기 들어서는 에너지 효율과 스마트홈 기술이 새로운 경쟁 요소로 떠올랐다. 그리고 AI 시대가 시작된 지금, 경쟁의 기준은 다시 한번 이동하고 있다.
앞으로의 집은 단순히 사람이 머무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을 이해하는 공간이 될 가능성이 높다. 사용자의 생활 패턴을 학습하고, 필요한 서비스를 먼저 제공하며, 때로는 데이터를 처리하고 연산 자원을 생산하는 플랫폼으로 기능할 수 있다.
결국 미래 주거의 경쟁력은 평수나 브랜드, 입지만으로 설명되지 않을지 모른다. AI 없는 세상을 경험해본 적 없는 첫 세대가 소비의 중심에 서는 순간, 집은 더 이상 ‘사는 곳’이 아니라 ‘함께 작동하는 환경’으로 재정의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변화는 이미 부동산이 아니라 기술 산업의 언어로 설명되고 있다.
참고: CNBC(2026.05.05.), Euromonitor International(2026.04.20.), Mansion Global(2025.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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