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백수 작가의 인기 네이버웹툰 ‘주차장’은 강남 500평 노지 주차장의 상속권을 둘러싼 선우와 곽영감의 심리전을 그린다. 웹툰 속 주차장은 누군가에게는 평생의 재산이고, 누군가에게는 반드시 차지해야 할 땅이다.
하지만 지금 현실의 주차장은 전혀 다른 가치를 품기 시작했다. 자동차를 세워두는 공간을 넘어 전기차를 충전하고, 자율주행차가 오가며, 공유 모빌리티가 순환하는 도시의 핵심 인프라로 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쌓이는 입출차 기록과 충전 정보, 차량 이동 데이터는 새로운 자산이 되고 있다.
자동차 등록대수가 2,635만 대를 넘어선 지금, 주차장의 경쟁력은 더 이상 땅의 넓이가 아니다. 앞으로는 얼마나 많은 데이터를 확보하고 활용하느냐가 시장의 승부를 가를 가능성이 커졌다.
곽백수 작가의 웹툰 ‘주차장'(출처: 네이버웹툰)
국내는 아이파킹, 해외는 자율주행…주차 산업의 판이 바뀐다
국내 주차장 시장은 약 1조5,000억원 규모다. 시장을 이끄는 곳은 아이파킹(구 파킹클라우드)이다. 전국 8,800~1만여 개 주차장을 클라우드로 통합 관제하며 압도적인 점유율을 확보했다. 하루 입출차 차량만 159만 대 이상이다. 매월 160개 신규 주차장과 계약을 체결하고 있으며, 전국 22개 지자체 550개 공영주차장을 운영해 공공 부문에서도 가장 높은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현재 SK E&S와 NHN이 각각 44.5%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아이파킹은 ‘365클라우드’ 플랫폼을 앞세워 매출 1,000억원 달성을 목표로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 시장의 변화 속도는 국내보다 훨씬 빠르다. 글로벌 주차관리 시장은 2025년 51억6,000만달러에서 2035년 237억6,000만달러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연평균 성장률은 16.5%에 달한다. 자율발렛파킹(AVP) 시장 역시 조사기관마다 차이는 있지만 연 15~30%의 고성장이 예상된다. 특히 고밀도 도시가 많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는 AVP를 도입하면 동일 면적에서 주차 가능 대수를 최대 40%까지 늘릴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기술 경쟁도 본격화했다.
미국에서는 메트로폴리스(Metropolis)가 AI 컴퓨터비전 기반 무정차 결제 시스템으로 16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 차량 번호와 이용자를 AI가 인식해 별도의 정차나 결제 과정 없이 출차하는 방식이다. 독일에서는 보쉬(Bosch)와 APCOA가 여러 주차장에 자율발렛파킹 기술을 적용하며 상용화를 확대하고 있다. 사람이 직접 운전하지 않아도 차량이 스스로 빈 주차 공간을 찾아 이동하는 시대가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중국은 한발 더 나아갔다. ETCP는 알리페이·위챗페이와 연동한 무감결제 서비스와 개인 유휴 주차공간 공유 모델을 구축했다. 주차장은 단순 관리 대상이 아니라 플랫폼 비즈니스의 기반이 됐다.
자율주행 데이터 경쟁도 치열하다. 바이두의 아폴로고는 누적 3억km, 포니에이아이는 누적 7,000만km 이상의 자율주행 데이터를 확보했다. 이렇게 축적한 데이터는 선전시의 무인 상업운행 허가로 이어졌고, 주차장 역시 자율주행 생태계의 핵심 인프라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국내에서도 같은 흐름이 나타난다. 서울로보틱스가 EY컨설팅과 공동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2030년 인프라 기반 B2B 자율주행 시장은 약 16조4,000억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이 가운데 완성차 탁송 자동화 시장만 4조3,000억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주차장이 더 이상 자동차를 세워두는 공간에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전기차 충전과 자율주행, 차량 관제와 물류까지 연결되면서 주차장은 모빌리티 산업의 핵심 거점으로 빠르게 역할을 넓혀가고 있다.
생성형 AI로 구현한 미래형 스마트 주차장 이미지. 전기차 충전과 자율주행, 데이터 기반 운영이 결합된 차세대 모빌리티 허브를 표현했다. (출처: 생성형 AI 이미지)
주차장, 모빌리티 허브가 되다
주차장의 역할은 이미 차량을 세워두는 공간을 넘어섰다. 전기차 충전소이자 공유차량 거점이고, 앞으로는 자율주행차가 대기하고 정비받는 운영기지 역할까지 맡게 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카셰어링이다. 쏘카와 그린카는 이미 전국 수천 개 차고지를 기반으로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쏘카는 전국 4,700여 개 쏘카존을, 그린카는 3,200여 개 그린존을 구축했다. 주차장이 곧 차량을 배치하고 운영하는 플랫폼인 셈이다. 최근 쏘카는 ‘모두의주차장’과 전기자전거 플랫폼 ‘일레클’을 잇달아 인수하며 슈퍼앱 전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사업 영역도 자율주행과 FMS(Fleet Management System)까지 넓혔다.
자율주행 시대에는 이런 변화가 더욱 빨라질 전망이다. 개인이 차량을 소유하기보다 호출형 공유차량을 이용하는 비중이 커질수록, 주차장은 단순한 주차 공간이 아니라 차량이 대기하고 충전하며 정비를 받는 운영 거점으로 바뀐다.
물류 분야도 다르지 않다. SDV(소프트웨어 정의 차량) 기술은 차량의 이동과 주차, 충전까지 자동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물류센터에서는 차량 스스로 이동하고 배치되는 서비스가 하나둘 등장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도 상용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HL만도의 자율발렛파킹 솔루션 ‘파키(Parkie)’와 현대위아의 주차로봇은 이미 국내 아파트 단지에 도입되기 시작했다. 국제표준 ISO 23374-1 제정과 독일 슈투트가르트 공항의 레벨4(L4) 자율발렛파킹 상용 승인 사례 역시 이러한 변화가 더 이상 미래 기술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다만 기술 발전과 함께 안전 기준도 높아지고 있다. 2024년 인천 청라 지하주차장 전기차 화재 이후 정부는 배터리 인증제와 신축 지하주차장 습식 스프링클러 의무화 등 안전 규제를 강화했다. 충전과 자율주행, 로봇 기술이 빠르게 확산하는 만큼 산업 성장과 안전 확보를 함께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생성형 AI로 구현한 미래 도시의 스마트 주차장 네트워크. 주차와 충전, 차량 이동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통합 관리하는 데이터 기반 모빌리티 플랫폼을 표현했다. (출처: 생성형 AI 이미지)
관건은 결국 데이터다
주차장이 이처럼 빠르게 진화하는 이유는 공간 자체보다 그 안에서 쌓이는 데이터의 가치가 커졌기 때문이다.
건물주를 대신해 매일 입출차와 이용률 데이터를 축적하는 곳은 교보리얼코, IBS, S&I, 에스원 등 FM(Facility Management) 기업들이다. 이들이 관리하는 주차와 보안, 에너지 데이터는 PM(Property Management), 나아가 AM(Asset Management) 단계로 이어지며 건물의 자산가치를 판단하는 핵심 근거가 된다.
결국 현장을 가장 많이 운영하는 기업이 가장 많은 데이터를 확보한다. 이 데이터를 포트폴리오 단위로 통합·분석하는 CRE(상업용 부동산) 데이터 기업의 가치도 함께 높아지는 이유다.
대표적인 기업이 알스퀘어다. 알스퀘어는 30만 건이 넘는 상업용 부동산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으며, 2025년 매출 2,001억원을 기록해 국내 프롭테크 업계 매출 1위에 올랐다. 최근에는 물류센터와 데이터센터, 호텔까지 아우르는 통합 PM 사업으로 영역을 넓히며 ‘부동산 업계의 블룸버그’를 목표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주차장에서 축적되는 데이터 역시 이러한 부동산 데이터 생태계와 결합하면서 새로운 자산으로 평가받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조인혜 한국프롭테크포럼 처장은 “충전과 자율주차, 화재안전, 모빌리티 데이터가 하나의 자산관리 체계 안에서 통합될수록 부지와 데이터를 함께 확보한 사업자가 다음 시장의 승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며 “물론 실제 기업가치는 시장의 평가를 받아야 하지만, 주차장을 둘러싼 산업의 중심이 상속 다툼의 서사에서 데이터 경쟁의 서사로 옮겨가고 있다는 흐름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웹툰 속 주차장은 상속을 둘러싼 재산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주차장의 경쟁력은 땅의 넓이가 아니라 그 공간에서 얼마나 많은 데이터를 축적하고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주차장을 둘러싼 경쟁도 부동산을 차지하는 싸움에서 데이터를 선점하는 경쟁으로 옮겨가고 있다.
* 스타트업 생태계 기자단은 KAIA와 벤처스퀘어가 함께 운영하며 스타트업 현장의 다양한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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