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창업가와 투자자가 만나는 자리는 적지 않다. 하지만 서로의 회사와 직함을 모르는 상태에서 만날 기회는 흔치 않다. 상대가 투자자인지 창업가인지조차 모른다면 서로를 바라보는 방식과 대화의 내용은 어떻게 달라질까.
벤처스퀘어와 스와레가 지난 27일 서울 SVC서울에서 개최한 ‘비하인드스퀘어(Behind Square)’ 2기는 이 같은 질문을 다시 한번 실험하는 자리였다. 비하인드스퀘어는 창업가와 투자자가 자신의 직함과 소속을 공개하지 않은 상태에서 먼저 대화를 나누고 프로그램 후반 서로의 정체를 공개하는 방식의 네트워킹 프로그램이다.
SVC서울에서 개최된 비하인드스퀘어 현장
지난 7월 열린 1기에는 스타트업 대표들과 투자자 20여명이 참여했다. 참가자들은 AI와 휴머노이드 로봇, 플랫폼, 화장품 등 서로 다른 산업에서 활동하고 있었지만 행사장에서는 이름만 적힌 명찰을 착용했다. 직함보다 사람을 먼저 알아가는 것이 프로그램의 핵심이었다. 이번 2기 행사 역시 스타트업 대표 및 임직원, AC/VC등 업계 관계자들 30여명이 참석했으며, 참석자 연령대는 20대부터 중장년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명승은 대표의 제안에서 시작된 실험…“명함보다 사람을 먼저 만나면 어떨까”
비하인드스퀘어의 시작에는 명승은 벤처스퀘어 대표의 제안이 있었다.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오랜 기간 창업가와 투자자들을 만나온 명 대표가 기존 네트워킹 방식에서 벗어나 서로의 직업적 배경을 모르는 상태에서 관계를 형성하는 프로그램을 제안하면서 행사의 밑그림이 그려졌다. 명 대표의 아이디어에 오프라인 만남을 기획·운영해온 스와레의 경험이 더해지면서 비하인드스퀘어라는 프로그램으로 구체화됐다.
명 대표는 “스타트업 생태계에서는 누구를 만나면 상대의 회사명이나 직함부터 확인하고 그 정보를 바탕으로 상대를 바라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며 “반대로 아무런 정보 없이 사람을 먼저 만나고 충분히 대화를 나눈 뒤 서로의 직업을 알게 된다면 전혀 다른 관계가 만들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프로그램”이라고 말했다.
이어 “1기에 이어 2기까지 진행하면서 확인하고 싶은 것도 결국 그 가능성”이라며 “투자자와 창업가가 이해관계를 가진 관계로 만나기 전에 한 사람으로 서로를 이해한다면 이후의 협업이나 투자에서도 더 다양한 연결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2기는 ‘비즈니스 미팅’으로…최진명 스와레 대표가 직접 MC 맡아
이번 2기는 ‘비즈니스 미팅’을 콘셉트로 기획됐다. 1기에서 시도한 직함과 소속 없는 만남의 기본 구조는 유지하면서 창업가와 투자자가 서로를 알아가고 자연스럽게 비즈니스 접점까지 확인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진행은 최진명 스와레 대표가 직접 맡았다. 더파티를 통해 오프라인 만남을 기획·운영해온 최 대표는 MC로 참가자들의 대화를 이끌었다. 참가자들은 여러 테이블로 나뉘어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의 생각과 관심사를 확인했다.
일반적인 스타트업 네트워킹에서 회사와 직함은 상대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빠른 정보다. 어떤 기업을 운영하는지, 어느 분야에 투자하는지에 따라 처음부터 대화의 방향이 달라지기도 한다. 비하인드스퀘어는 이러한 정보를 의도적으로 뒤로 미룬다. 상대방의 회사나 직함을 알 수 없는 만큼 특정한 사업적 목적을 전제로 접근하기보다 실제 대화를 통해 상대를 알아가고 이후 비즈니스 접점을 발견하도록 한 것이다. 최 대표는 “좋은 만남을 만드는 데 반드시 상대에 대한 많은 정보가 먼저 필요한 것은 아니다”며 “오히려 직업이나 회사 같은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는 상대가 하는 말과 생각, 대화하는 방식 자체에 더 집중하게 된다”고 말했다.
SVC서울에서 개최된 비하인드스퀘어 현장(2)
투자자인지 창업가인지를 떠나 일단 ‘사람’을 먼저 집중하는 행사
행사에서는 창업가와 투자자라는 역할 자체도 대화의 후순위로 밀려났다. 통상적인 IR이나 스타트업 네트워킹 자리에서 투자자와 창업가는 각각 ‘투자를 검토하는 사람’과 ‘투자를 유치하는 사람’이라는 관계로 만나는 경우가 많다. 기업의 사업모델과 시장성, 투자유치 계획 등이 자연스럽게 대화의 중심에 놓인다.
그러나 상대방의 역할과 업무범위를 알 수 없는 비하인드스퀘어에서는 이러한 관계가 처음부터 성립하기 어렵다. 상대방이 VC 심사역인지 스타트업 대표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는 특정 참가자에게 IR을 하거나 투자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접근하기도 어렵다. 이는 정량정보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통상적인 비즈니스 네트워킹에서 상대적으로 후순위가 되기 쉬운 정성정보까지 기준을 확장하여 상대를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하려는 의도에서 설계된 것이다.
이날 참석자 가운데 최연소 참가자였던 김태은 블리스바인벤처스 심사역도 행사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김 심사역은 “스타트업 업계 전반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사람들과 직접 만나 직함이나 회사 이름 없이 사람 대 사람으로 먼저 알아갈 수 있었던 경험이 인상적이었다. 실제적인 이야기를 나누며 업계를 바라보는 견문을 넓힐 수 있었던 점이 좋았다.” 고 소감을 전했다.
참가자의 연령이나 경력, 직급 역시 사전에 드러나지 않아 비하인드스퀘어의 취지는 더욱 분명해졌다. 참석자들은 상대의 연차나 직업적 위치보다 실제 대화에서 드러나는 생각과 관심사를 통해 서로를 알아갔으며, 투자자 역시 소속과 직함을 앞세우지 않고 다른 참가자들과 동일한 조건에서 대화를 시작해 기존 스타트업 네트워킹과는 다른 방식으로 참가자들과 관계를 형성했다.
“가장 궁금했던 사람은 누구?”…투표 뒤 공개된 참가자들의 정체
참가자들이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에서는 상대방의 직함과 소속 대신 실제 대화에서 형성된 인상이 중요한 정보로 작용했다. 프로그램 후반에는 대화를 나눈 참가자 가운데 인상 깊었던 사람을 선정하는 인기투표도 진행됐다. 직업적 배경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대화와 상호작용만으로 서로를 평가해보는 과정이다.
이후 참가자들의 회사와 직함을 공개하는 ‘리빌(Reveal)’이 이어졌다. 행사 내내 이름으로만 알고 있던 사람이 실제로 어떤 스타트업을 운영하는지, 어떤 분야에 투자하는 심사역인지가 이 과정에서 공개됐다. 일반적인 스타트업 네트워킹이 ‘회사와 직함을 확인한 뒤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이라면 비하인드스퀘어는 그 순서를 뒤집는다. 사람을 먼저 알아간 뒤 그 위에 비즈니스 정보를 더하는 방식이다.
지난 1기에서도 리빌은 참가자들에게 예상하지 못했던 반전을 만들었다. 서로를 창업가 또는 투자자로 예상했지만 실제 직함이 공개되면서 예상과 달랐던 참가자들이 나오기도 했다. 2기 역시 인기투표와 리빌을 거치면서 앞서 대화를 나눴던 상대방에 대한 개인적인 인상과 실제 비즈니스 영역이 뒤늦게 연결됐다.
두 차례 진행된 비하인드스퀘어의 특징은 창업가와 투자자의 만남 자체를 새롭게 만드는 데 있지 않다. 스타트업 생태계에는 이미 데모데이와 IR, 콘퍼런스, 밋업 등 다양한 형태의 네트워킹 프로그램이 존재한다. 비하인드스퀘어가 달리 접근한 것은 이들이 서로를 알아가는 ‘순서’다. 회사와 직함을 먼저 제시하고 대화를 시작하는 대신 개인의 생각과 경험을 먼저 공유한다. 이후 상대방의 직업적 배경을 공개해 인간적인 관계와 비즈니스 관계가 순차적으로 형성되도록 했다.
명승은 대표가 제안한 아이디어는 스와레의 오프라인 만남 운영 경험과 결합해 지난 7월 첫 번째 행사로 이어졌고, 이번에는 ‘비즈니스 미팅’이라는 콘셉트를 더한 두 번째 행사로 확장됐다. 행사 말미에는 명승은 대표와 이날 MC를 맡은 최진명 대표가 참가자들에게 직접 소감을 전했다.
SVC서울에서 개최된 비하인드스퀘어 현장(좌측 스와레 최진명 대표, 우측 벤처스퀘어 명승은 대표)
명 대표는 “비하인드스퀘어가 반드시 규모가 큰 행사가 돼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오히려 참가자들이 서로 충분히 이야기하고 행사 이후에도 실제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밀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비즈니스 미팅을 콘셉트로 기획한 이번 2기 행사에 관심을 갖고 참여한 참가자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최 대표는 “이번 비하인드스퀘어가 성황리에 마무리될 수 있도록 관심을 갖고 함께해 주신 모든 참가자분께 두루 감사드린다”며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서로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는 자리로 이어질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계속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어 같은 기획의 비하인드스퀘어 3기 행사도 연내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스타트업 생태계 기자단은 KAIA와 벤처스퀘어가 함께 운영하며 스타트업 현장의 다양한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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