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컬 AI 연구에서 알고리즘만큼 큰 장벽은 이를 실제로 움직여볼 로봇 하드웨어다. 연구자가 새로운 제어 방식이나 AI 모델을 검증하려면 로봇 설계와 제작, 센서 구성부터 시작해야 해 정작 연구 주제에 집중하기까지 상당한 시간과 자원이 필요하다. 엔젤로보틱스가 이 과정을 줄이기 위해 연구자들이 공통 하드웨어 위에 각자의 알고리즘을 올려 바로 실험할 수 있는 웨어러블 로봇 플랫폼을 내놨다. 로봇의 상태뿐 아니라 근육 활성도와 지면반발력 등 사람의 움직임까지 함께 수집해 피지컬 AI가 학습할 수 있는 데이터로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웨어러블 로봇 기업 엔젤로보틱스는 피지컬 AI 연구개발용 웨어러블 로봇 ‘phai-x1(파이-엑스원)’을 공개했다. phai-x1은 엔젤로보틱스의 보행보조로봇 ‘엔젤슈트 H10(ANGEL SUIT H10)’의 하드웨어를 기반으로 개발됐다. 연구자가 별도의 웨어러블 로봇을 처음부터 제작하지 않고 기존 하드웨어에 자신이 개발한 제어 알고리즘을 적용해 연구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엔젤로보틱스가 공개한 피지컬 AI 연구개발용 웨어러블 로봇 ‘phai-x1’. 연구자가 자체 제어·AI 알고리즘을 적용하고 사람과 로봇의 움직임 데이터를 함께 수집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사진 제공: 엔젤로보틱스)
제품 개발은 지난해 중순 시작됐다. 로봇공학과 제어공학을 비롯해 피지컬 AI, 생체역학, 인간 동작 분석, 의공학·재활공학 등 서로 다른 분야의 연구자가 동일한 하드웨어를 활용하면서 각자의 연구 주제에 집중할 수 있는 공통 연구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목표다.
phai-x1은 좌우 고관절을 각각 독립적으로 제어한다. 사용자 알고리즘 구현과 데이터 수집을 담당하는 확장 모듈 ‘XM10’을 통해 연구자가 원하는 프로그램을 직접 구성할 수 있다. 설계한 제어 알고리즘은 1초에 1000번, 1kHz 주기로 실행해 실제 로봇에 적용하고 결과를 검증할 수 있다.
로봇만 보는 AI 넘어 사람의 근육·움직임까지 데이터로
phai-x1의 또 다른 특징은 로봇 자체의 움직임과 사람의 신체 반응을 함께 기록할 수 있다는 점이다. 보행 중 관절 움직임과 로봇 상태 데이터를 수집하는 동시에 다양한 외부 센서를 연결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몸의 기울기와 움직임을 감지하는 관성측정계(IMU)를 비롯해 근육의 활성도를 확인하는 근전도(EMG) 측정기, 발이 지면을 디딜 때 발생하는 힘을 측정하는 지면반발력(GRF) 감지기 등을 연동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로봇이 어떤 동작을 수행했는지만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순간 사람의 몸이 어떻게 움직이고 근육이 어떻게 반응했는지 함께 데이터로 확보할 수 있다.
수집된 데이터는 사람의 보행과 사람-로봇 상호작용 분석, 움직임 의도 추정, 사용자의 움직임에 맞춘 보조 제어 등에 활용할 수 있다. AI 강화학습 기반의 웨어러블 로봇 제어를 비롯한 인간 동작 데이터 연구에도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실제 연구·교육 환경에서의 활용 가능성도 시험했다. 지난 8월 열린 국제 로봇 경진대회 ‘IFAC 웨어러블 로봇 챌린지 2026’에서는 참가자 대부분이 phai-x1을 처음 접했지만 약 2시간의 현장 교육을 받은 뒤 알고리즘 개발에 들어갔다.
참가팀들은 이틀 동안 같은 phai-x1 하드웨어를 이용하면서 서로 다른 제어·감지 시스템을 구현했다. 웨어러블 로봇의 움직임을 활용한 게임 인터페이스부터 고르지 않은 지면에서의 보행 제어, 미끄럼 감지 및 보조 제어, 편마비 보행자를 위한 보행 지원, 근전도 기반 성능 평가 등이 개발됐다.
각 팀이 로봇 하드웨어를 별도로 설계·제작하는 대신 동일한 플랫폼을 이용하면서 제어와 센싱, AI 알고리즘 개발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엔젤로보틱스는 이 사례를 바탕으로 phai-x1을 연구뿐 아니라 피지컬 AI와 웨어러블 로봇 교육에도 활용한다는 구상이다.
공급 대상도 대학과 공공 연구기관, 기업 연구소, 대학병원·의과대학 연구실, 의공학·재활공학 연구기관 등으로 확대한다. 제품 판매에 그치지 않고 교육 프로그램과 연구 프로젝트, 로봇 경진대회, 공동연구 등으로 활용 범위를 확장할 예정이다.
공경철 엔젤로보틱스 미래기술원장은 “AI가 사람의 움직임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카메라 영상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phai-x1은 사람과 로봇이 주고받는 힘, 근육이 활성화되는 시점, 발이 지면에 닿을 때 발생하는 힘을 함께 기록해 데이터로 남기는 플랫폼”이라고 말했다. 이어 “phai-x1이 여러 분야의 연구자들에게 공통의 연구 기반이 돼 국내 피지컬 AI 연구 생태계와 산업 전반이 함께 성장하는 데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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