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컬 AI를 둘러싼 경쟁이 전시장 한복판으로 들어왔다. 생성형 AI가 디지털 공간에서 인간의 지적 노동을 보조하는 단계에 도달했다면, 산업계의 시선은 이제 실제 물리적 환경에서 로봇이 사람처럼 인지하고 판단하며 손을 움직이는 ‘피지컬 AI(Physical AI)’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다. 그 변화의 현주소를 한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는 무대가 서울 코엑스에 마련됐다.
국내 최대 규모 테크 비즈니스 플랫폼 ‘STK 2026(제15회 스마트테크 코리아)’이 6월 10일부터 12일까지 사흘간 서울 코엑스 전관에서 열린다. 올해 15주년을 맞은 STK 2026은 ‘The Tech Nexus’를 주제로 AI, 로봇, 스마트제조, 보안, 디지털 유통·물류, 양자기술, 디지털 헬스케어 등 미래 산업 전반을 아울렀다. 16개국 620개사가 참여해 1,800개 부스를 채우며 역대 최대 규모로 치러지고 있다.
전시장은 1층(코엑스 A·B홀)을 ‘AX를 통한 기업 비즈니스의 재설계’, 3층(C·D홀)을 ‘AI와 로보틱스를 통한 산업 자동화와 생산성 혁신’이라는 테마로 나눴다. 이 가운데 로보테크쇼(Robot Tech Show)가 자리한 3층은 행사 기간 내내 가장 많은 관람객이 몰린 공간이었다. 단순히 움직이거나 물건을 집는 수준을 넘어 실제 산업 현장에서 요구되는 정교한 작업 능력을 직접 확인하려는 발길이 부스마다 줄을 이었다.
코엑스에서 열린 STK 2026 로보테크쇼 현장.
“보는 로봇에서 일하는 로봇으로”…글로벌 휴머노이드 군단 집결
올해 로보테크쇼의 최대 관전 포인트는 전 세계가 주목하는 글로벌 휴머노이드 기업의 대거 참여였다. 특히 중국 기업들의 강세가 두드러졌다.
‘테슬라 옵티머스의 대항마’로 불리는 애지봇(AGIBOT)은 가장 큰 화제를 모았다. 전신 휴머노이드 ‘A3’, 소형 휴머노이드 ‘X2’, 휠 기반 휴머노이드 ‘G2’에 4족보행 로봇과 고정밀 로봇 핸드까지 더해 라인업 전반을 한 부스에 펼쳐 놓으며, 휴머노이드를 단일 제품이 아닌 ‘제품군’으로 끌어올린 전략을 그대로 보여줬다.
이동형 양팔 로봇을 앞세운 갤봇(GALBOT)도 시선을 모았다. 360도 전 방향으로 움직이는 휠 베이스와 긴 작업 반경의 매니퓰레이터를 결합한 ‘G1’은 키 1.73m의 몸체로 사람 키를 훌쩍 넘는 높이의 선반 작업까지 소화하도록 설계됐다. 양팔로 수십 킬로그램을 들어 올리는 고하중 모델 ‘S1’은 자율 이동과 장애물 회피, 연속 작업 기능을 강조했다. 휴머노이드가 전시용 시연을 넘어 물류·창고 현장의 실제 작업 단위로 진입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밖에도 유니트리(UNITREE)는 휴머노이드와 4족보행 로봇을, 림엑스다이나믹스(LIMX Dynamics)는 풀 사이즈 휴머노이드와 2족 보행 로봇을 선보였다. 인간의 촉각을 재현하는 데 주력해 온 파시니(PaXini)는 휴머노이드 상체와 무인운반차(AGV)를 결합한 로봇이 택배를 집어 분류하는 장면을 시연하며, ‘손끝의 정교함’이 피지컬 AI의 핵심 경쟁력임을 직관적으로 드러냈다.
행사장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된 흐름은 분명했다. 로봇 경쟁의 무게중심이 ‘얼마나 잘 걷고 균형을 잡느냐’에서 ‘얼마나 사람의 손처럼 물체를 다루느냐’, 즉 손재주(Dexterity)로 옮겨가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 휴머노이드 기업 애지봇(AGIBOT)이 STK 2026 로보테크쇼에서 휴머노이드 로봇 시연을 선보이고 있다.
K-로봇의 활로…강소기업과 부품 생태계의 존재감
글로벌 기업들의 화려한 시연 사이에서 국내 강소기업들도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들의 전략은 ‘범용 휴머노이드’를 정면으로 좇기보다 현장 적용과 핵심 기술 영역에서 승부를 거는 쪽에 가까웠다.
산업 현장의 무인화를 겨냥한 로아스(LOAS)는 소리 데이터를 분석해 설비 이상 징후를 잡아내는 AI 음향진단 기술을 기반으로 한 통합 관제 플랫폼을 선보였다. 자율주행 물류 로봇(AMR) 전문 기업 티로보틱스(T-ROBOTICS)는 제조·물류 현장의 ‘다크 팩토리’ 구현을 겨냥한 하드웨어 라인업을 공개했다. 서비스 로봇 분야에서는 알지티(RGT)가 국내 기술로 개발한 서빙 로봇을 전시하며 복잡한 실내 환경에서의 주행 안정성을 강조했다.
사람과의 상호작용 자체를 기술로 끌어올린 사례도 눈길을 끌었다. 퓨처이모텍은 비전언어모델(VLM)을 기반으로 시선과 표정, 목 움직임으로 사람과 교감하는 감성표현 휴머노이드 헤드 플랫폼을 공개했다. 휴머노이드의 쓰임새가 산업 자동화를 넘어 안내·교육·돌봄 등 사람과 직접 마주하는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흐름이다.
여기에 감속기·액추에이터 등 로봇의 ‘관절’을 만드는 부품 기업과 자동화 솔루션 기업이 함께 참여하면서, 로보테크쇼는 완성형 로봇 한 대를 전시하는 행사를 넘어 부품부터 소프트웨어, 현장 적용까지 이어지는 로봇 산업 생태계 전반을 조망하는 자리로 기능했다.
STK 2026 로보테크쇼에 참가한 파시니(PaXini)의 휴머노이드 로봇. 물체를 인식하고 집어 옮기는 작업을 수행하며 산업 현장에서 요구되는 손재주(Dexterity)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승부처는 모델이 아니라 현장”…피지컬 AI 경쟁의 본질
이번 로보테크쇼가 던진 메시지는 단순한 신제품 경연을 넘어선다. 전시장을 관통한 화두는 ‘기술’보다 ‘현장’이었다.
휴머노이드 경쟁은 이제 모델 성능 자체보다 실제 산업 현장에서 축적한 데이터와 이를 적용하는 엔지니어링 역량에서 갈린다는 평가가 힘을 얻고 있다. 아무리 정교한 모델이라도 제조·물류·서비스 현장의 변수 속에서 실제로 작동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누가 더 많은 현장 경험과 데이터를 확보하고, 이를 인간 수준의 손재주로 구현해 실제 산업에 배포하느냐가 승부를 가른다.
이 지점에서 한국의 위치는 양면적이다. 중국 기업들은 부품 내재화와 수직계열화, 물량 공세를 앞세워 완성형 휴머노이드 시장에서 빠르게 치고 나가고 있다. 반면 한국은 제조업과 산업 인프라, 빠른 실행 속도, 대기업과의 협업 환경이라는 자산을 갖추고 있다. 핵심 부품의 해외 의존도와 범용 파운데이션 모델의 부재는 분명한 과제이지만, 제조·물류·서비스 현장에 축적된 데이터와 이를 다룰 엔지니어링 역량은 피지컬 AI 시대에 좀처럼 흉내 내기 어려운 경쟁력으로 꼽힌다.
STK 2026 주최사무국은 “AI 시대에는 개별 기술보다 기술 간 연결과 산업 간 융합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며 “STK 2026이 AI가 산업과 일상, 기술과 비즈니스를 연결하는 글로벌 비즈니스 허브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밝혔다.
생성형 AI가 디지털 세계를 바꿨다면, 피지컬 AI는 현실 세계를 바꾸기 시작했다. 코엑스 3층을 가득 메운 휴머노이드들은 더 이상 ‘보여주기 위한 로봇’이 아니라 ‘일하기 위한 로봇’으로 진화하고 있었다. 이제 남은 질문은 분명하다. 누가 더 빨리 그 손재주를 현장으로 가져가, 실제 산업의 변화를 만들어내느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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