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미디어 확산 이후 기업의 저비용·고효율 바이럴 마케팅 수단으로 자리잡은 만우절
-유머와 리스크 경계 속 ‘피해자 없는 자기지향적 장난’ 중심의 성공 문법
만우절, 기업에게는 가장 가벼운 실험의 날(출처: AI 생성 이미지)
장난과 신뢰 사이, 국내외 기업 만우절 마케팅의 명암
“개인 명의로 소유한 제가 거주 중인 집을 팔고, 그 차익으로 토스 팀원 100명의 월세 또는 대출이자 전액을 평생 지원하고자 한다.”
지난 4월 1일, 비바리퍼블리카 이승건 대표가 사내에 올린 공지다.
업계에는 ‘만우절 장난이겠지’와 ‘혹시 이번에도 진짜?’와 같은 반응이 동시에 흘렀다. 이 묘한 긴장감 자체가, 만우절이 기업 커뮤니케이션의 특수한 무기로 자리잡았음을 보여준다.
공지의 탈을 쓴 마케팅, CEO의 장난이 HR 전략이 되기까지
국내에서 만우절 마케팅이 본격화된 것은 소셜미디어가 확산된 2010년대 초반이다. 2011년 안랩은 공식 트위터에 “오늘 하루 악성코드 대응 안 함”이라는 한 줄을 올렸다. 보안회사의 자기부정이라는 역설이 순식간에 퍼졌다. 별도 광고비 없이 브랜드 인지도를 극대화한 교과서적 사례로 회자된다.
배달의민족은 ‘배달비 0원 영원히’라는 공지로 소비자 심리의 정중앙을 찔렀다.
왓챠는 2020년 ‘왓플릭스’ 출시를 선언하며 넷플릭스와의 가상 합병을 연출했고, KT는 같은 해 ‘Animal GiGA Genie’라는 반려동물용 AI 서비스를 발표해 웃음을 유도했다. 모두 하루 만에 소셜에서 수만 건의 반응을 끌어냈다. 공통점이 있다. 광고가 아니라 ‘공지’의 형식을 빌렸다는 것이다.
공식 채널에서 진지한 척 올리는 황당한 내용이 오히려 더 크게 퍼진다.
외부 마케팅과 별개로, 사내를 향한 만우절 이벤트는 하나의 장르가 됐다. 이승건 대표는 그 분야에서 자주 거론되는 인물이다. 이유는 하나다. 약속을 지킨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2022년 만우절 공지로 시작된 테슬라 차량 10대 무상 대여는 현실화됐다. 2025년에는 오키나와 2박3일 포상 여행을 100명에게 항공·숙박 전액 자비로 제공했다. 올해 ‘집 팔아 월세 평생 지원’ 공지가 단순한 웃음으로 소비되지 않는 것은 그 맥락에서다.
김현정 백석예대 극작과 겸임교수는 “주목할 것은 이승건 개인보다 이 방식이 만들어내는 조직 내 효과”라며, “CEO가 자신의 자산을 걸고 구성원에게 농담처럼 약속을 건네는 형식 자체가, 위계를 허무는 소통 방식으로 기능한다”고 설명한다. 이 구도를 의도적으로 설계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만우절은 어느새 HR 전략의 영역으로 진입했다.
주가를 흔든 장난, 브랜드의 민낯을 드러내는 하루
해외 사례는 파장이 다르다. 2018년 일론 머스크는 만우절에 ‘테슬라 파산’을 선언하는 트윗을 올렸다. 주가가 실제로 요동쳤고, 장난임이 밝혀진 뒤에야 시장이 안정됐다. 유머와 리스크의 경계가 그만큼 얇다는 방증이었다. 구글은 2014년 구글맵에 포켓몬 찾기 기능을 숨겨두는 장난을 쳤고, 이 아이디어가 훗날 포켓몬 GO의 씨앗이 됐다는 후문이 전해진다.
BBC는 1957년 스위스 농가에서 스파게티를 나무에서 수확한다는 가짜 다큐멘터리를 방영해 수천 명의 시청자가 재배 문의 전화를 걸었다. 방송 역사의 고전으로 남은 사건이다.
만우절 마케팅이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선을 넘은 장난은 역풍을 맞는다. 실제 소비자 피해나 오해를 유발하는 공지, 사회적 약자를 소재로 삼은 유머는 브랜드 이미지를 단숨에 훼손한다. 업계는 만우절 콘텐츠의 성패를 가르는 기준으로 ‘피해자 없는 유머’를 꼽는다. 웃음의 대상이 경쟁사나 특정 집단이 아닌, 자기 자신이거나 상황 자체일 때 반응이 좋다는 것이 통설이다.
이승건 대표의 올해 공지도 그 문법을 따른다. 집을 파는 주체는 CEO 자신이고, 수혜자는 구성원이다. 장난이든 진심이든, 화살이 자기 자신을 향한다. 성공하는 만우절 이벤트의 공통 문법이다.
4월 1일은 기업이 자신의 문화적 감수성을 시험받는 날이기도 하다. 하루짜리 거짓말이 브랜드의 민낯을 드러낸다. 어떤 기업은 그날 사랑받고, 어떤 기업은 욕을 먹는다. 캘린더에 표시된 단 하루, 만우절의 무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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