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이 디지털자산 서비스를 도입하려면 지갑 보안뿐 아니라 자금세탁방지와 권한 통제, 사고 대응, 국내 책임 주체까지 함께 검증돼야 한다. 해외 사업자는 기존 신고 사업자를 인수해 시장에 진입할 수도 있지만 비트고는 한국에 별도 법인을 세우고 신규 사업자 심사를 받는 경로를 택했다. 글로벌 본사의 기술을 그대로 들여오는 데 그치지 않고 정보보호와 내부통제 체계를 국내 규제에 맞춰 다시 구축한 것이다. 하나금융그룹과 SK텔레콤이 주주로 참여한 비트고코리아가 가상자산사업자 신고 수리를 계기로 국내 기관용 디지털자산 인프라 시장에 진입한다.
글로벌 디지털자산 인프라 기업 비트고(BitGo)의 한국 법인 비트고코리아는 금융정보분석원(KoFIU)으로부터 가상자산사업자(VASP) 신고 수리를 통보받았다고 20일 발표했다. 금융정보분석원은 지난 18일 신고를 수리한 것으로 전해졌다.
비트고코리아는 이번 사례가 특정금융정보법상 가상자산사업자 신고제 시행 이후 글로벌 디지털자산 기업이 한국 시장 진출을 위해 신규 법인을 설립하고 직접 신고 수리를 받은 첫 사례라고 설명했다. 관련 보도에 따르면 비트고코리아는 기관과 기업 고객을 대상으로 디지털자산 수탁과 이전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신고 수리는 비트고코리아가 신고된 범위의 가상자산 서비스를 국내에서 제공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을 확보했다는 의미다. 회사는 가상자산 이전과 보관·관리, 매도·매수 및 다른 가상자산과의 교환에 대한 중개·알선·대행 업무를 추진할 계획이다. 개별 서비스 운영 과정에서는 특정금융정보법상 자금세탁방지 의무와 관련 규제를 계속 충족해야 한다.
비트고 로고 (사진 제공: 비트고코리아)
비트고코리아는 국내 기존 사업자를 인수하지 않고 신규 법인을 설립했다. 이후 비트고의 기술과 시스템을 국내에 도입하면서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자금세탁방지(AML), 내부통제, 보안 및 운영 체계를 한국 규제 기준에 맞춰 구축했다.
주주 구성에는 국내 금융·통신 대기업이 참여했다. 하나금융그룹은 비트고코리아 지분 약 25%, SK텔레콤은 약 10%를 취득했다. 비트고의 디지털자산 보안 기술에 하나금융의 금융사업 기반과 SK텔레콤의 ICT 역량을 결합하는 구조다.
첸 팡 비트고코리아 대표이사 겸 비트고 최고수익책임자는 “한국 고객을 대상으로 장기적인 사업을 하려는 글로벌 기업이라면 한국의 규제 테두리 안에서 기술과 시스템을 검증받는 것이 필수적”이라며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정식 법인을 설립하고 신고 절차를 밟은 이유”라고 말했다.
수탁에서 지갑·거래 인프라까지…기관시장 공략
비트고코리아가 겨냥하는 시장은 개인 대상 가상자산 거래보다 금융기관과 기업의 디지털자산 서비스 구축 영역이다. 기관용 디지털자산 수탁을 시작으로 지갑 솔루션과 기술 인프라, 자산 이전 및 거래 지원으로 사업 범위를 확대할 계획이다.
기관용 지갑은 자산을 보관하는 기능 외에 키 관리와 다중 승인, 담당자별 권한 설정, 거래 한도와 정책 적용, 이상 거래 통제 기능을 함께 요구한다. 은행이나 증권사, 핀테크 기업은 지갑 인프라를 API로 기존 시스템과 연결해 자체 디지털자산 서비스를 설계할 수 있다.
비트고는 멀티시그와 MPC 기반 임계값서명방식(TSS) 등 디지털자산 키 관리 기술을 개발해왔다. 이를 기반으로 수탁과 거래·유동성, 스테이킹, 스테이블코인, 결제·정산 관련 인프라를 기관 고객에게 제공하고 있다.
글로벌 본사의 제도권 금융시장 진입도 한국 사업의 신뢰 기반으로 활용될 전망이다. 비트고는 2026년 1월 뉴욕증권거래소에 ‘BTGO’ 종목코드로 상장했다. 미국 통화감독청(OCC)은 이에 앞서 2025년 12월 비트고의 사우스다코타주 신탁회사를 연방 신탁은행으로 전환하는 신청을 조건부 승인했다.
다만 글로벌 규제 이력과 국내 대기업의 지분 참여만으로 기관 고객의 선택이 결정되지는 않는다. 금융기관은 수탁 자산의 분리 관리 방식과 사고 발생 시 책임 구조, 시스템 가용성, 외부 지갑과의 연동, 수수료, 규제 보고 체계를 종합적으로 검토한다.
비트고코리아의 경쟁력도 ‘글로벌 기업의 첫 직접 신고 수리’라는 상징성보다 실제 기관 고객 확보와 무사고 운영, 자금세탁방지 체계의 지속적인 작동 여부로 평가될 가능성이 크다. 국내 금융기관이 비트고의 지갑과 수탁 기술을 자체 서비스에 연결하고 이를 안정적으로 운영한다면 이번 신고 수리는 해외 디지털자산 인프라와 한국 금융시장을 연결하는 실질적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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