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 5월이다. 5월이 되면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더 많이 난다. 아버지는 같은 대학의 스승이었다. 난 아버지에게 배우고 다시 그 대학의 교수가 되는 행운을 누렸다. 내가 물리학자가 되고 교수가 된 것은 모두 아버지의 음덕이다. 나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항상 부지런히 뭔가를 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봤다. 아마 내가 가만히 있지 못하고 늘 무언가를 하는 성격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일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
아버지는 미국 유학 시절 태양전지를 연구했으며 처음으로 태양전지라는 개념을 한국에 소개했다. 태양전지는 아인슈타인의 광전효과를 이용해 빛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전환하는 반도체 디바이스다. 그때가 1973년 제
1차 오일 쇼크가 일어난 때였다.
제4차 중동 전쟁이 일어나자 아랍 산유국은 석유를 무기화했고 공급이 줄어들면서 가격이 폭등해 세계적으로 에너지 위기가 닥쳤다. 전 세계에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했고 한국은 당시 24.8%에 이르는 물가 폭등과 경제성장률 둔화를 겪으며 대통령 긴급조치까지 단행되었다. 당시에도 석유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던 한국은 심각한 경제적 타격과 에너지 위기를 맞이했다.
마침 이때 서울에 돌아온 아버지는 태양전지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대학에서 태양전지 제작에 성공하자 함께 연구한 제자들에게 사업화를 미련 없이 맡기고 다시 다른 연구를 하기 시작했다.
그다음 시작한 연구는 진공 장비를 제작해 반도체 박막을 만드는 일이었다. 당시 대한민국 최초로 진공 증착 장치를 제작했다. 반도체 공정은 대부분 진공 장치 안에서 박막 형태로 이루어진다. 대학에 설치한 거대한 진공 장치는 당시 대한민국에서 유일한 장비였다. 이 연구는 삼성전자가 반도체 사업을 시작하던 시기와 맞물렸는데 이 기술 역시 제자들을 통해 기업으로 흘러들어갔다. 다른 대학도 서서히 반도체 연구를 시작했다.
그 후 연구한 분야는 전자 세라믹이었다. 전자 세라믹은 전통적인 도자기와 달리 고순도 재료를 정밀하게 제어하여 반도체, 무선통신, 자동차, 에너지산업에 필수적인 정밀 부품을 만드는 분야였다. 당시 전자 세라믹 분야는 미국과 일본에서도 막 시작하는 단계였다.
아버지는 세라믹을 이용해 통신 부품을 연구했다. 이동통신이 등장하기 한참 전에 소형의 통신용 마이크로파 필터를 연구한 것은 매우 앞선 일이었다. 이동전화가 보편화되기 시작하면서 연구가 큰 주목을 받았다. 이 연구 역시 함께하던 제자들을 통해 세라믹 전자 부품 산업 현장으로 흘러들어갔다. 아버지가 직접 사업을 할 수 있었지만 그쪽에는 일절 관심이 없었다.
아버지는 정년퇴임을 기다렸다는 듯이 맞이했다. 정년퇴임 다음 날 짐을 싸서 남해의 무인도 같은 섬으로 내려가 배를 만들고 자유의 삶을 누렸다. 당시 나는 일본으로 유학 가서 마이크로파를 연구하고 있었다.
아버지와 아들이 동시에 물리학자인 경우가 적지 않겠지만 대표적인 부자 물리학자로는 조지프 존 톰슨과 조지 패짓 톰슨이 있다. 1897년 조지프 존 톰슨은 음극선 실험을 통해 원자보다 작은 입자인 전자의 존재를 처음 입증해 현대 원자물리학의 출발점을 열었다. 그는 이 공로로 1906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아들 조지 패짓 톰슨은 전자가 파동적 성질을 가진다는 회절현상을 실험적으로 입증해 1937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그는 전자가 양자역학적으로 입자와 파동적 이중성을 가진다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양자역학의 발전에 매우 중요한 공헌을 했다.
약 30년의 간격을 두고 단순한 가족 이야기를 넘어 전자에 대한 과학적 개념이 세대를 거쳐 완성된 교과서적인 사례다. 기록에 의하면 아버지 톰슨은 매우 온화하고 신사적인 성품으로 아들에게 특정 연구를 강요하지 않았고 자유롭게 학문을 선택하도록 했다고 한다. 아들은 아버지와 같은 주제를 연구했지만 독립적인 업적을 남길 수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아버지 모습
내가 대학생이었던 시절 아버지에게 직접 들은 물리학 수업은 고체물리학 한 과목뿐이었다. 나는 맨 앞줄에 앉아 누구보다 열심히 아버지의 수업을 들었다. 아버지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 많은 수업을 들을 수도 있었지만 당시에는 아버지 수업을 듣는다는 것이 남의 시선도 의식되고 부담스럽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점이 매우 후회스럽다. 아버지의 수업을 더 들었으면 좋았을 걸.
잊히지 않는 아버지의 모습이 하나 있다. 이삿날이었다. 이사를 다 마치고 어수선한 툇마루에 앉아있던 아버지가 책을 한 권 발견하고는 읽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밖에 나가 놀다가 어둑해질 무렵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까지 자세 하나 흐트러짐 없이 어둑해진 툇마루에서 책을 읽고 계셨다. 이 모습이 아직도 가슴속에 남아있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아버지의 모습으로.
가정의 달이자 가족의 달이다. 우리 모두는 가족으로부터 왔다. 모두가 가족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5월이 되었으면 한다.
이기진 서강대학교 물리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