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지난 몇 년간 생성형 AI를 두고 물었던 질문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였다. 이제 질문은 ‘실제 업무를 어디까지 맡길 수 있는가’로 옮겨가고 있다. AI 에이전트가 기업 데이터에 접근하고 기존 시스템과 연결돼 직접 업무를 수행하기 시작하면서 정확도만큼이나 데이터 접근 권한과 보안, 비용, 통제의 문제가 중요해졌다. 스노우플레이크가 서울에서 꺼내든 ‘에이전틱 엔터프라이즈(Agentic Enterprise)’도 이런 변화에서 출발한다. AI를 만드는 것을 넘어 기업 안에서 실제로 일하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를 다룬다.
스노우플레이크는 27일 서울 코엑스에서 ‘스노우플레이크 월드 투어 서울 2026’을 열고 기업의 데이터와 AI 에이전트를 실제 업무 환경으로 확장하기 위한 전략과 신기능을 공개했다. 올해로 다섯 번째를 맞은 행사에는 발라 카시비스와나탄 스노우플레이크 AI 및 개발자 경험 담당 부사장과 이용석 한국 지사장 등이 참석했다. 제조·리테일·금융·게임·마케팅·기술 분야 국내 주요 기업 17개사도 각자의 데이터·AI 활용 경험을 공유했다.
이날 논의는 AI를 도입할 것인가보다 도입한 AI를 기업 안에서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로 이어졌다. 기업 내부에 흩어진 데이터와 업무 맥락을 AI가 이해하고, 업무에 맞는 모델을 선택해 기존 애플리케이션과 연결돼야 한다. 여기에 에이전트가 접근할 수 있는 데이터와 수행할 수 있는 업무의 범위를 정하고 보안과 비용까지 관리하는 체계도 필요하다.
이용석 스노우플레이크 한국 지사장이 ‘스노우플레이크 월드 투어 서울 2026’에서 한국 시장의 성장과 국내 기업의 데이터·AI 활용 확대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한국서 18배 성장…고객과 함께 커진 AI 데이터 생태계
스노우플레이크가 한국 지사를 출범한 2021년 이후 2025년까지 국내 매출은 약 18배, 고객 수는 10배 이상 증가했다. 올해 상반기 매출도 전년 동기 수준을 넘어섰다. 현재 국내 10대 그룹 가운데 8곳을 비롯해 넥슨, 카카오, 토스 등이 스노우플레이크에서 데이터와 AI 워크로드를 운영하고 있다.
이용석 한국 지사장은 이 같은 성장의 배경으로 국내 기업의 데이터 활용 변화를 꼽았다. 처음에는 흩어진 데이터를 한곳에 모으고 분석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수요가 컸지만, 축적한 데이터를 AI가 활용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이를 업무 혁신과 비즈니스 성과로 연결하려는 기업이 빠르게 늘었다. 이날 제시한 ‘데이터 자산 환경 현대화→AI 활용을 위한 데이터 준비→AI를 통한 구성원의 업무 혁신과 비즈니스 성과 실현’도 국내 고객들이 거쳐온 변화와 연결된다. 삼성, SK, CJ, LG, 신세계, 한화, 포스코, GS 등 주요 그룹으로 고객군이 확대됐고, 행사에 참여한 17개 국내 기업 역시 제조·유통·금융·게임·마케팅·기술 등 각자의 산업에서 데이터와 AI를 실제 업무에 적용한 경험을 공유했다.
기업이 데이터를 AI에 활용하기 시작하면 다음 질문은 자연스럽게 AI에 어느 정도의 일을 맡길 것인가로 넘어간다. 발라 카시비스와나탄 부사장도 지난 1년간 기업들이 가장 많이 고민한 문제로 ‘AI를 어떻게 실무에 적용할 것인가’를 꺼냈다. 새로운 모델이 등장할 때마다 성능을 비교하는 것만으로는 기업의 AI 전환을 완성하기 어렵다. AI 에이전트가 기업의 데이터와 업무 시스템 안으로 들어가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해야 비로소 실제 업무의 변화로 이어진다.
일부 글로벌 기업에서는 이미 이런 장면이 현실이 됐다. 톰슨로이터는 민감한 데이터를 다루는 업무 전반에 수천 개의 에이전트를 배포했고 사노피는 대규모 조달 업무에 AI를 활용한다. 언더아머는 리테일과 이커머스, 공급망 데이터를 연결하고 캔바는 AI 기반 제품 분석에 데이터를 활용한다. 스노우플레이크가 말하는 ‘에이전틱 엔터프라이즈’도 AI가 기업의 데이터와 시스템을 활용해 실제 업무를 수행하는 이러한 환경을 가리킨다.
하지만 에이전트의 업무 범위가 커질수록 기업이 관리해야 할 영역도 함께 늘어난다. 데이터는 여러 시스템과 클라우드에 흩어져 있고 ERP와 CRM 등 기존 업무 시스템의 구조도 제각각이다. 여기에 AI가 민감한 기업 데이터까지 다루게 되면 어떤 정보에 접근하도록 할지, 어떤 행동까지 허용할지, 사용하는 모델과 비용은 어떻게 관리할지까지 정해야 한다.
발라 부사장이 제시한 에이전틱 엔터프라이즈의 네 가지 축은 이 문제를 각각 나눠 다룬다. 신뢰할 수 있는 엔터프라이즈 데이터와 컨텍스트를 기반으로 AI가 기업의 업무 맥락을 이해하고, 용도에 따라 AI 모델을 선택하며, 기존 소프트웨어와 애플리케이션을 연결한다. 여기에 통합 에이전틱 컨트롤 플레인을 두고 에이전트의 접근과 행동을 관리하는 구조다.
결국 기업이 AI에 더 많은 일을 맡긴다는 것은 에이전트의 능력만 키우는 문제가 아니다. AI가 무엇을 알고, 어디에 접근하며, 어떤 행동까지 할 수 있는지 기업이 정할 수 있어야 한다. 모델 선택부터 데이터와 기존 시스템의 연결, 보안과 비용까지 기업이 주도권을 쥔 상태에서 AI를 확장하는 것. 스노우플레이크가 이날 말한 ‘에이전틱 엔터프라이즈’의 핵심도 여기에 있다.
발라 카시비스와나탄 스노우플레이크 AI 및 개발자 경험 담당 부사장이 AI 에이전트를 기업의 실제 업무로 확장하는 ‘에이전틱 엔터프라이즈’ 전략을 소개하고 있다.
AI 에이전트의 다음 과제는 ‘통제 가능한 실행’
이날 공개된 기능들은 AI 에이전트의 실행과 통제를 하나의 환경 안에서 연결한다. ‘코텍스 AI 게이트웨이(Cortex AI Gateway)’는 여러 AI 모델과 에이전트, 기업 시스템 사이에서 신원과 접근 권한, 보안, 비용을 관리한다. AI가 기업 곳곳으로 들어갈수록 어떤 에이전트가 어떤 데이터에 접근하고 무엇을 실행했는지 추적해야 하는 만큼, 에이전트의 활동 범위를 기업이 직접 정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최근 인수한 AI 에이전트 신원·접근 거버넌스 기업 나토마(Noma)의 기술도 스노우플레이크 호라이즌과 결합한다. 에이전트의 접근 권한과 행동을 관리하면서 데이터 유출을 막고 플랫폼 자체의 보안까지 이어지는 구조다. 발라 부사장은 현장에서 에이전트 보안과 데이터 보안, 플랫폼 보안을 세 축으로 짚으며 기업이 정한 보안 경계를 AI 환경에서도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에이전트가 늘어나면 모델 호출과 컴퓨팅 사용량이 함께 증가하기 때문에 비용 문제도 뒤따른다. 사람과 팀은 물론 개별 에이전트에도 예산을 설정하고 시간에 따른 사용량을 관리하도록 해 AI를 전사적으로 확장하는 과정에서 비용을 함께 관리하도록 한 것도 핵심이다.
모델 선택에서는 상용 프런티어 모델과 오픈소스 모델 가운데 업무에 적합한 것을 선택하고, 클라우드 환경이 달라져도 기업의 보안 경계와 데이터 거버넌스를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빠르게 달라지는 모델의 성능과 비용에 대응하면서 특정 기술에 종속되지 않도록 선택의 폭을 열어뒀다.
이런 기반 위에서 실제 업무를 수행하는 에이전트가 올라간다. ‘스노우플레이크 코워크(Snowflake CoWork)’는 일반 구성원이 자연어로 기업 데이터를 찾고 분석해 업무에 활용하도록 돕는다. 개발자를 위한 ‘스노우플레이크 코코(Snowflake CoCo)’는 데이터 파이프라인 구축과 시맨틱 뷰 생성부터 분석, 애플리케이션 개발까지 자연어로 수행한다. 코코 데스크톱에서는 기존 역할 기반 접근제어(RBAC)를 유지한 채 개발할 수 있어 아이디어를 코드로 만들고 프로덕션까지 옮기는 과정을 같은 데이터 환경 안에서 이어갈 수 있다.
애플리케이션을 구동하기 위해 데이터를 별도로 옮길 필요도 줄였다. 마켓플레이스에서는 데이터가 있는 곳에서 앱과 AI 에이전트를 실행해 이동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보안과 거버넌스 부담을 낮춘다. 정형·비정형 데이터와 기업의 업무 맥락을 한데 활용하면서 여러 에이전트를 구축하고 배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국내 기업들은 이미 AI가 맡는 업무의 범위를 넓히고 있다. KB국민은행은 2026년 AI 에이전트를 약 300개까지 확대해 프런트·미들·백오피스에 적용하고, 향후 고객 대상 에이전틱 AI까지 확장할 계획이다. AI를 단순한 업무 보조 도구로 활용하는 수준을 넘어 은행의 실제 업무 곳곳에 에이전트를 배치하는 단계로 접어든다.
티냅스 강민성 대표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AI에게 어디까지 맡길 수 있을까’를 물었다. 기업이 AI에 더 많은 업무를 맡길수록 답변의 정확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AI가 만든 답변이나 행동이 실제 실행으로 넘어가기 전에 기업의 정책과 권한, 데이터를 기준으로 평가하고 통제해야 한다. 티냅스가 ‘런타임 트러스트옵스(Runtime TrustOps)’를 통해 다루는 영역도 이 부분이다. AI의 업무 범위가 커지는 만큼 그 행동을 검증하고 제어하는 장치 역시 함께 갖춰야 한다.
스노우플레이크가 이번 행사에서 내놓은 에이전틱 엔터프라이즈 역시 ‘더 똑똑한 AI’를 만드는 경쟁과는 조금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 기업의 데이터와 업무 맥락을 이해하고 기존 시스템을 넘나들며 행동하면서도 접근 권한과 비용, 보안에 대한 통제권은 기업에 남겨두는 방식이다.
한국 시장에서 지난 5년간 기록한 약 18배의 성장도 데이터 플랫폼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이제 스노우플레이크는 기업 데이터를 모으고 분석하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그 데이터 위에서 AI가 판단하고 행동하는 영역까지 가져간다. AI 에이전트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계를 지나, ‘얼마나 많은 일을 안전하게 맡길 수 있는지’가 기업 AI의 새로운 경쟁 기준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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